[더파워 유연수 기자] 대상포진은 한 번 지나가는 ‘피부병’이 아니라, 어릴 때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다시 깨어나 신경을 공격하는 질환이다. 특히 50대 이후 환자가 급격히 늘고, 극심한 신경통과 장기 후유증을 남길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예방이 강조된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구상 교수는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가 신경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다시 활성화되는 병으로, 피부 발진이 사라진 뒤에도 장기간 통증과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며 “백신 접종과 발병 초기(72시간 이내)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상포진의 원인은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다. 이 바이러스는 수두를 앓은 뒤 척추 신경절 등에 증상 없이 잠복해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면역 기능이 떨어지거나, 암·당뇨·류마티스질환, 면역억제제·항암제 사용,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 등으로 세포면역이 약해질 때 다시 활성화된다. 바이러스는 특정 감각신경을 따라 이동하면서 피부에 띠 모양의 발진과 물집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신경염·신경괴사를 일으켜 매우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전형적인 증상은 몸 한쪽에 국한된 통증이다. 화끈거리거나 찌르는 듯한 통증, 감각 이상이 먼저 나타나고, 수일 뒤 같은 부위에 붉은 반점과 작은 물집이 무리를 지어 띠처럼 생긴다. 주로 옆구리, 얼굴, 눈 주변에 많지만 몸통·다리 등 전신 어디에도 발생할 수 있고, 드물게 내장기관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에는 발열·몸살·두통이 동반돼 감기나 심장·소화기 질환으로 오인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또 발진과 수포는 거의 없고 띠 모양의 통증만 나타나는 ‘무발진 대상포진’ 형태도 있어, 초기에 감별 진단이 중요하다.
치료의 핵심은 가능한 한 빨리 항바이러스제를 시작하는 것이다. 발진·수포가 생기고 72시간(3일) 안에 아시클로비르, 발라시클로비르 등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피부 병변 치유 속도가 빨라지고, 대표적인 합병증인 대상포진 후 신경통 위험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증이 심할 때는 일반 진통제뿐 아니라 신경통 약(가바펜티노이드 계열), 국소 마취 패치, 신경차단술 등을 병합해 적극적으로 통증을 조절한다.
안면신경, 눈 주변, 귀, 생식기처럼 중요한 부위에 대상포진이 생기거나 면역저하자·고령자·임신부에서는 합병증 위험이 높아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안구 주변에 발생하면 시력 저하, 청력 손상, 안면신경 마비 등 반영구적 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신속한 진료가 요구된다.
예방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백신이다.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는 만 50세 이상 성인, 또는 만 18세 이상이면서 암·장기이식·면역억제제 투여 등 심각한 면역저하 상태에 있는 성인에게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최근 사용되는 재조합 대상포진 사백신은 2회 접종만으로 10년 이상 90% 이상 대상포진 예방 효과와 대상포진 후 신경통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과거 생백신을 맞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예방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재조합 사백신을 추가 접종하는 것이 권고된다.
이 교수는 “현재 쓰이는 재조합 대상포진 사백신은 과거 생백신과 달리 암 치료, 장기이식, 류마티스질환 등으로 면역억제제를 쓰는 환자에서도 안전하게 접종할 수 있다”며 “50세 전후라면 본인의 질환 상태와 약물 복용 여부를 전문의와 상의해 백신 접종을 적극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다만 백신이 모든 발생을 100%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과로·과음·흡연을 줄이는 생활습관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면역력이 유지된다. 이 교수는 “대상포진은 결국 면역이 약해졌을 때 틈을 타는 질환인 만큼, 평소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곧 예방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전파 가능성에 대한 오해도 많다. 대상포진은 환자 몸속에서 재활성화된 바이러스이지만, 수포가 터진 부위와 직접 접촉하면 수두에 걸린 적이 없는 아이, 임신부, 면역저하자에게 수두를 옮길 수 있다. 따라서 수포가 마르고 딱지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는 발진 부위를 깨끗하게 가리고, 어린이·임신부·중증 만성질환자와의 밀접 접촉을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문제는 피부 발진이 가라앉은 뒤에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합병증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다. 신경이 분포하는 어느 부위에서든 발생할 수 있고, 특히 눈·귀·얼굴 신경을 침범하면 시력·청력 저하, 얼굴 근육 마비 등 심각한 기능 장애와 동반되기도 한다.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 감각이 둔해졌는데도 옷깃만 스쳐도 견디기 힘든 이질통·통각과민 등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가려움, 화끈거림, 찌릿한 자극 때문에 옷을 입거나 샤워할 때마다 고통을 호소하며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환자도 적지 않다.
통증이 길어지면 수면 부족, 불안, 우울감, 사회적 위축 같은 정신·정서적 후유증도 뒤따른다. 장기간 이어지는 통증과 피로, 두려움 탓에 업무와 집안일,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일부 환자는 우울증·불안장애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발진이 가라앉고 수주에서 수개월이 지난 뒤에도 해당 부위에 불에 타는 듯하거나 전기가 오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1개월, 넓게는 3개월을 넘어 통증이 이어지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본다. 통증이 수년, 심하면 평생 지속되기도 하며, 수면 장애와 우울, 일상생활 제한을 초래할 수 있다. 고령, 초기 급성 통증이 심했던 경우, 면역 저하가 있는 경우일수록 발생 위험이 높다.
이 교수는 “대상포진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초기부터 정확한 진단과 적극적인 통증 치료가 중요하다”며 “통증이 경미한 경우에는 항바이러스제와 진통제 등 약물 치료만으로도 후유증 없이 좋아질 수 있지만, 고령이거나 통증·수포 범위가 넓고, 얼굴처럼 중요한 부위에 발생했다면 신경차단술 등 보다 적극적인 통증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상포진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단순 피부질환이 아니라, 심각한 통증과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하는 신경질환”이라며 “50세 전후에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띠 모양 통증이나 수포, 발진이 의심될 때는 지체하지 말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