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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특집 비평 : 금보성비엔날레] 한글이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된다는 것

최성민 기자

기사입력 : 2026-08-22 11:00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한글을 그리는 것을 넘어, 한글로 새로운 미술의 규칙을 발명한다는 것

프랑스 미학의 전통에서 예술은 대상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익숙해진 세계의 질서를 흔들고,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사건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금보성의 한글회화를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질문은 “화면에 한글이 있는가”이다.

한글이 보인다는 사실은 출발점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글이 회화를 발생시키는가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과 한글이라는 문자체계로부터 새로운 조형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가 문자의 사용이라면 후자는 문자의 미학적 전환이다.
따라서 금보성비엔날레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금보성은 한글을 이미지로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한글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고 있는가. 바로 이 차이에서 한글은 소재를 벗어나 하나의 미학적 사건이 될 가능성을 얻는다.

-문화는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성되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과거로부터 전달된다. 그러나 문화는 현재에서 다시 만들어진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한글을 위대한 문자라고 기념하는 일은 역사적 기억에 속한다. 그러나 한글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회화와 공간, 감각과 사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문화적 생산에 속한다. 살아 있는 문화는 원형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 원형을 배반할 자유를 가진다.
변형되고, 해체되고, 다른 매체와 만나며 때로는 처음의 기능마저 잃는다. 그 과정에서 문화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금보성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글은 더 이상 반드시 읽혀야 할 필요가 없다.
자음은 단어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고, 획은 발음과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으로부터 이탈한다. 그 순간 문자는 선이 되고, 선은 면을 만들며, 면은 색과 충돌하고, 색은 다시 공간의 리듬을 발생시킨다.
문자가 자신의 기능을 잃는 순간 오히려 다른 존재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금보성의 ‘해제’라는 개념은 따라서 단순한 형태적 해체가 아니다.
그것은 문자에게 부여되어 있던 읽혀야 한다는 운명으로부터의 해방에 가깝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미학적 조건이다

한글을 아는 한국인이 금보성의 화면 앞에서 곧바로 읽기를 시도한다면 오히려 작품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한글을 보는 순간 읽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보성의 화면은 그 자동적인 습관을 방해한다.
읽으려 하지만 읽히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알아보지만 그것이 단어로 완성되지 않는다.바로 이 짧은 실패에서 작품은 시작된다.
읽기의 실패는 보기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문자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획의 방향과 간격, 색채의 긴장, 면의 충돌, 반복과 단절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따라서 금보성 한글회화의 중요한 미학적 가능성은 한글을 잘 보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한글을 쉽게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한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언어로서 잠시 침묵함으로써 이미지로서 발언하기 시작한다.

-금보성의 문제는 ‘한글의 형태’가 아니라 ‘한글 이후’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비평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자음을 해체하고 획을 분리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미학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문자의 해체는 이미 20세기 이후 수많은 현대미술에서 시도되어 왔다. 언어와 이미지의 경계를 흔드는 일 역시 새로운 사건만은 아니다.
따라서 금보성에게 더욱 엄격한 질문이 필요하다.
한글을 해체한 다음 무엇이 발생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하다.

ㄱ이 더 이상 ㄱ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자음이 읽히지 않을 만큼 변형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사각형과 어떻게 다른가. 금보성 한글미학의 성패는 바로 이 경계에서 결정될 것이다.
한글을 알아볼 수 있을 때가 아니라, 한글이 거의 사라진 이후에도 그 조형질서 속에 한글의 사고방식이 남아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한글은 소재가 아니라 생성 원리가 된다.

-예술가는 문자를 발명하지 않는다. 문자에서 가능성을 발명한다

금보성이 한글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재료를 최초로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 이후 현대미술이 끊임없이 보여준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예술의 혁명은 반드시 새로운 물질을 발명하는 데서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대상과 세계를 전혀 다른 관계 속에 놓음으로써 그것을 바라보는 규칙을 바꾸기도 한다.
금보성에게 한글 역시 이러한 문제와 만난다.
그가 발명해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자음이 아니다.
자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조건이다.
한글을 읽는 체계에서 보는 체계로 이동시키고, 의미의 단위에서 조형의 단위로 전환하며, 평면의 문자에서 신체가 경험하는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것.

그러한 변환이 하나의 일관된 방법론으로 성립한다면 금보성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한글 그림’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한글을 변환시키는 규칙이 된다.
그리고 미술사는 작품뿐 아니라 바로 그러한 규칙의 발명을 기억한다.

-반복보다 중요한 것은 변주다

한 작가가 수십 년 동안 하나의 주제를 지속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지만 프랑스적 의미에서 지속은 동일성의 보존이 아니라 차이의 생산이어야 한다.

같은 ㄱ을 천 번 그렸다는 사실보다 천 번째 ㄱ이 첫 번째 ㄱ과 어떤 철학적 거리를 갖게 되었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금보성의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자는 언제 해체되기 시작했는가.
색채는 언제 문자에서 독립했는가.
획은 언제 선이 되었는가.
선은 언제 면으로 확장되었는가.
그리고 회화는 언제 화면을 벗어나 건축적 공간과 관객의 신체를 요구하기 시작했는가.
이 변화가 확인될 때 오랜 작업기간은 단순한 경력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가 진화한 시간이 된다.
금보성비엔날레가 회고전 이상의 의미를 가지려면 바로 이 시간을 보여주어야 한다.
작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에 관한 하나의 생각이 어떻게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면서 다른 상태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르는 한 사람이 선언할 수 없다

‘한글회화’라는 명칭 역시 비평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한 작가가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고 장르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장르란 작품의 집합이 아니라 공유 가능한 문제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금보성의 방법이 오직 금보성에게만 유효하다면 그것은 독자적인 개인양식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질문이 다른 작가에게 전달되고, 전혀 다른 세대가 그것을 변형하고 반박하며, 연구자가 이론화하고, 비평가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제시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순간 한 개인의 형식은 하나의 담론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금보성비엔날레의 더 큰 과제는 금보성의 작품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금보성에게서 출발한 질문을 금보성의 소유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미학이 문화가 되기를 원한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타인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비평은 작품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생명을 연장한다

프랑스 현대미술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작품 주변에 끊임없이 담론을 생산해왔다는 데 있다.
작품은 미술관에 걸리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비평가가 질문하고, 철학자가 해석하며, 연구자가 역사적 계보를 검토하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반박하면서 작품의 의미는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금보성비엔날레에 필요한 것도 찬사의 축적만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작품일수록 가장 강한 비평을 초대해야 한다.

한글을 제거해도 금보성의 회화는 성립하는가.
그의 기하학은 한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가.
대형화는 미학적 필연인가, 아니면 시각적 장관인가.
‘해제’는 실제 작품 내부에서 작동하는 개념인가, 아니면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부여된 언어인가.
이러한 질문을 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비평을 견디는 작품만이 찬사를 넘어 역사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은 한국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글의 세계화라는 표현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한글 작품을 전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작품 앞에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가이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관객에게 한글이 낯선 문자라 하더라도 인간이 기호를 만들고, 기억하고, 해체하고, 다시 조직하는 보편적인 행위에 관한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때 한글은 한국성을 잃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특수한 것에서 가장 보편적인 질문으로 이동한다.

세계미술사에서 중요한 예술은 자신의 뿌리를 지운 예술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통해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질문을 만들어낸 예술이었다.

-금보성비엔날레 이후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모든 전시는 사라진다.
거대한 작품도 철거되고, 관객도 떠나며, 전시장은 다시 비워진다.
그러나 예술에는 물리적인 전시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이 있다.
금보성비엔날레 이후 사람들이 한글을 이전과 동일하게 바라본다면 이 전시는 거대한 전시였을 수는 있어도 미학적 사건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전시 이후 누군가가 묻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자는 반드시 읽혀야 하는가.
자음은 의미에서 독립할 수 있는가.
문자의 구조가 회화의 문법이 될 수 있는가.
회화가 다시 공간과 건축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하나의 문자체계가 21세기 현대미술에 새로운 조형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금보성 이후에도 살아남는다면 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어쩌면 전시장에 걸려 있던 그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질문 자체가 작품의 연장이 될 것이다.

-한글이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된다는 것

결국 한글이 문화가 된다는 것은 한글을 보호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글이 계속 다른 것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글이 예술이 된다는 것은 한글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읽기의 규칙을 흔들고, 문자의 기능을 중단시키며, 그 내부에서 선과 면, 색과 공간, 신체와 사유의 새로운 관계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보성의 작업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은 더 이상 이것이 아니다.

“금보성은 한글을 얼마나 오래 그렸는가.”

또는 “금보성은 한글을 얼마나 크게 그렸는가.”
질문은 훨씬 더 엄격해야 한다.

“금보성은 한글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어떤 미술의 규칙을 만들어냈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 뒤따른다.
“그 규칙은 금보성 자신을 떠나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한 작가의 양식이 만들어진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하나의 미학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른 작가와 비평가, 연구자와 다음 세대가 그 규칙을 계승하고 반박하고 다시 파괴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비로소 문화가 된다.
금보성비엔날레의 진정한 야심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글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 것.
한글로 세계미술이 아직 갖지 못한 하나의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
프랑스적 의미에서 예술의 혁명은 새로운 이미지를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이미지를 만드는 규칙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금보성의 한글이 미술사에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 그 지점이다.
그가 한글을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가 아니라, 한글 이후 우리가 회화를 바라보는 방식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차이가 증명되는 순간, 한글은 더 이상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문자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에서 태어나 세계를 향해 제안되는 새로운 미술의 문법이 된다.

최성민 더파워 기자 Sungmin@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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