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은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법치주의와 적’이라는 제목으로 BBC 라디오에서 한 강연을 담고 있다.
그는 서양 문명 쇠퇴 현상으로 성장 둔화, 부채 증가, 인구 감소, 그리고 반사회적 행동을 지적한다. 현재 한국이 처한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서 공유한다.
서구 사회를 지탱해 온 네 개의 주요 기둥으로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 시민사회를 꼽으며, 이들 제도가 서구 문명의 번영과 쇠퇴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본다.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이유는 지리적·기후적 요인이 아니라 이러한 제도적 우위 때문이라는 것이다.
퍼거슨은 애덤 스미스의 통찰을 인용하며, 법과 제도가 쇠퇴하고 특권층이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며 지대 추구에 몰두할 때 국가는 정체 상태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특히 민주주의의 퇴보를 첫 번째 요소로 지적하며, 이는 세대 간 사회적 계약의 붕괴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대의정치의 결과로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채가 축적되었으며, 이를 해결하려면 더 책임 있는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미래 세대의 부모와 조부모를 설득해, 재정 개혁을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공공 부문은 자산과 부채를 투명하게 비교하는 대차대조표를 작성해야 하며, 이를 방치하면 신용 손실과 재무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강제적인 소비 축소와 세금 인상을 초래하며, 궁극적으로는 채무 불이행과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수 있다.
시장경제의 왜곡은 과도하고 복잡한 규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퍼거슨은 복잡한 규제 자체가 경제를 약화하는 질병이라고 보며, 규제 내에 내재한 모순과 비효율성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규제를 준수하지 않는 사람이나 기업에 대한 신상필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규제의 핵심은 단순성과 일관성에 있다고 본다.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양극화를 주요 사회적 문제로 삼지만, 그는 과도한 규제가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약화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법치주의의 약화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복잡하고 엉성한 성문법과 그로 인한 법적 비용 증가를 법치주의의 가장 큰 적으로 지목한다.
영국의 성공이 관습법의 진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하며, 법치주의가 약화한 국가들이 폭력감소, 재산권 보호, 정부 견제, 부패 예방이라는 네 단계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한때 법치주의의 모델로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변호사 중심의 법률가 통치로 인해 법적 비용이 지나치게 증가했다고 비판한다.
시민사회의 변질은 과도한 국가 의존과 강력한 중앙정부의 확대로 인해 심화하고 있다. 퍼거슨은 토크빌과 퍼트넘의 견해를 인용하며, 프랑스가 자유보다 평등을 강조한 결과 강력한 중앙정부와 약화한 시민사회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민단체의 활동이 줄어든 원인으로 과학기술의 발달, 특히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영향을 지적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정’을 추구하는 복지국가 정책이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도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퍼거슨은 특히 사립학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치권이 있는 사립학교가 학생들의 기강과 학습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단순히 엘리트 교육의 특권이 아니라, 취약 계층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도구로도 바라본다. 인도 빈민가에서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의 대안으로 작동하며, 가난한 학생들에게 유일한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례를 통해, 사립학교가 어떻게 빈곤 문제를 완화하고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핀란드만이 유일하게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고 있으며, 인접한 스웨덴과 덴마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퍼거슨은 민주주의의 붕괴, 과도한 규제, 법치주의의 약화, 그리고 시민사회의 변질이 오늘날 서양 문명의 쇠퇴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책임 있는 재정 정책, 단순하고 효율적인 규제, 법치주의의 강화, 그리고 시민사회의 자발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 사회 역시 퍼거슨의 분석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법률가 중심의 정치 구조는 법 만능주의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법치주의를 약화하고 법적 비용을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시민사회의 약화와 과도한 국가 의존 문제, 특히 관변 시민단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글: 이병록 예비역 제독·정치학 박사·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