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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러일전쟁으로 끝난 영·러 간 1차 그레이트 게임 "

이설아 기자

기사입력 : 2025-02-28 10:57

[이병록의 책을 통해 세상 읽기] 정의길의 '지정학의 포로들-1/3'

"한반도에서 러일전쟁으로 끝난 영·러 간 1차 그레이트 게임 "
대외정책 성공 여부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좌표가 아니고,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의 복합적인 경합을 봐야 한다. 한국 보수와 진보 진영은 모두 북핵 문제에 대해 이상주의적 접근을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보수 진영은 ‘북한을 제거하여 위협을 해소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한편, 진보 진영은 ‘민족적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대화와 포용을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을 생존과 국익을 위해 몸부림치는 독립적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의 실리와 손익을 계산하는 현실주의적 접근이 절실하다.

유럽에서 세력균형 질서는 중심에 있는 독일이 세력균형을 깨트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었다. 1차 대전 이전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5대 열강이 균형을 이루며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1차 대전 이후 영국은 고립주의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내전과 국력 저하로, 프랑스 혼자서 불만에 찬 독일을 상대해야 했다. 독일의 현실적 힘을 인정하고 세력균형 한 축으로 받아들였다면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은 오랜 세월 동안 ‘영예로운 고립’ 정책을 펼치면서 최후의 중재자로서 필요할 때만 개입하되, 대륙 내부 세력 관계에는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으려 했다. 러시아는 국외자이지만, 나폴레옹 등장 등 유럽 세력균형이 와해 될 때마다 이를 복원시키면서 유라시아 대륙 세력의 패자로 성장했다. 영국과 러시아가 대륙 식민지 패권을 놓고 벌인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와 영국의 대립, 한반도의 지정학적 역할

유럽이 식민지 확장을 진행하는 동안, 러시아는 자연적 방벽이 없는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외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전략을 택했다. 영토 확장은 단순한 팽창이 아니라 방어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토 팽창은 전략적 종심을 제공했으나 내부 불안과 반발을 제어하는 데 힘을 소모하고, 전체주의 체제와 공포정치로 일관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다.

영국은 러시아의 인도 진출을 본격적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수백 년 동안 하루에 약 140㎢, 1년에 약 5만㎢씩 늘어났다. 19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는 3,000㎞ 이상 떨어져 있었으나, 19세기 말에 30㎞ 이하로 줄어들었다. 영국은 매파적 관점에 완전히 기울고, 러시아 공포에 대한 유일한 방법은 전진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완충국가나 위성국가를 만들든, 먼저 자리를 차지해 침략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아프간을 장악하면 최대 식민지 인도를 침공하는 전진기지가 될 것을 우려했다. 1835년 영국은 아프간을 선공했다. 세 차례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배제된 중립국으로 만드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중국에서 커지는 영국과 프랑스의 존재는 러시아를 자극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남진은 영국을 위협했다. 러시아는 베이징 조약 체결에 성공해 연해주 지역을 얻었다. 청은 경제적 이권을 노리는 양이와 달리 영토를 직접 위협하는 북방 오랑캐로 러시아를 인식하게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합종연횡을 일으키는 그레이트 게임을 촉발시켰다.

1861년 러시아 군함 포사드니크로가 쓰시마섬 일부 지역을 빌릴 것을 일본에 요구하며 정박한다. 영국이 두 척의 전함을 파견하여 러시아 철수를 끌어냈다. 일본의 러시아 공포증을 촉발했고, 영일동맹이 형성되는 시초였다. 독일 팽창에도 전력이 부족한 영국은 만주에서 러시아를 저지하기 위해서 1902년 영일동맹을 체결한다. 대영제국이 한계에 도달했고, 영국 주도 세계질서가 수명을 다했다는 전조였다.

◆ 한반도: 러일전쟁과 그레이트 게임의 한 축

1885년 3월 31일 아프간 인근 오아시스 도시 판데를 러시아군이 점령했다. 영국은 현지 대응이 쉽지 않자, 거문도를 2년간 점령하여, 다른 곳에서 위협한다. 전면전까지 번지지는 않았으나 한반도 주변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영·러가 상대방 진출의 보루가 될 것을 우려해서 현상 유지 차원으로 조선을 완충지대로 만들었다. 조선은 서방 세계와 만남이 늦춰지고, 일본에 기회가 되었다. 일본은 조선이 러시아 영향권에 들어가면 본토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인식했다. 조선 개항 목적 중 하나는 러시아 영향에 대한 선제 방어 성격이다. 조선은 그레이트 게임의 한 무대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러일전쟁의 무대가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 결론: 그레이트 게임과 한국의 교훈

19세기 영·러 간의 그레이트 게임은 대륙과 해양 세력의 충돌 지점으로서 지정학적 중요성을 드러냈다. 한국 대외정책이 성공하려면 과거 교훈을 바탕으로 현실주의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강대국 사이에서 자율성과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편은 미국과 소련의 제2차 그레이트 게임이다.

글: 이병록 예비역 제독·정치학 박사·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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