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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피할 수 있다... 예정된 건 전략의 실패다"

이설아 기자

기사입력 : 2025-04-14 09:42

[이병록의 책을 통해 세상 읽기] 그레이엄 앨리슨의 '예정된 전쟁' 

"전쟁은 피할 수 있다... 예정된 건 전략의 실패다"
21세기 국제질서를 가로지르는 중대한 질문 중 하나는 “미국과 중국은 전쟁을 피할 수 있는가?”이다. 하버드대 국제 안보전문가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원제: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에서 이 질문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원제의 의미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인데, 한국어판 제목인 『예정된 전쟁』은 운명론적 함의를 더 짙게 풍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정반대다. 전쟁은 예정된 운명이 아니라, 피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책임자로 연구했던,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의 통찰에서 비롯됐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아테네의 확신에 찬 주장은 오만으로 부풀어 올랐고, 스파르타의 불안은 피해망상 수준으로까지 곪아갔다. 강대국 간 구조적 긴장, 즉 부상하는 세력의 자신감과 기존 세력의 불안이 충돌할 때 전쟁은 발생한다. 저자는 500년 동안의 패권 교체 사례 16건 중 12건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말한다. “전쟁은 필연이 아니다. 문제는 강대국들이 그 함정을 인식하고도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는가이다.”

이 책은 단순한 국제정치 분석을 넘어, 미·중 양국의 문명적·정치 문화적 차이를 깊이 있게 조망한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와 분권을 중시하며, 정부를 필요악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가능한 한 작고 덜 개입하는 정부가 이상이다. 반면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중앙집권적 통치를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해 왔다. 강력한 중앙 권력이 있을 때 국가는 안정됐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전국시대나 군벌 혼란으로 빠졌다. 따라서 중국인에게 정부는 질서와 번영의 핵심 행위자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외교 전략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시간을 대하는 감각에서도 양국은 극명하게 다르다. 미국은 민주주의 구조상 언론과 여론에 민감하고, 대통령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요구받는다. 빠르고 확실한 결과가 정치적 성공의 전제다. 반면 중국은 수천 년 역사에서 체득한 ‘전략적 인내’의 문화를 갖고 있다. 전체 판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수십 년을 기다릴 수도 있는 장기전에 능숙하다. 엘리슨은 이를 체스와 바둑에 비유한다. 미국은 전면전을 통해 상대를 빠르게 제압하려는 체스 고수고, 중국은 몇 수 뒤를 보는 바둑 고수다. 이처럼 전략적 감각 차이는 때때로 위험한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도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이 구축한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보편적 질서로 인식하며, 이를 수호하는 것을 도덕적 책무로 여긴다. 반면 중국은 그 질서가 자신들이 아편전쟁 이후 ‘굴욕의 세기’를 겪던 시절 서구가 만들어놓은 틀이다. 따라서 현재의 국제규범과 제도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는 미·중 간 충돌이 단순한 힘의 싸움이 아니라 ‘질서를 보는 눈’ 자체의 충돌임을 보여준다.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두 지도자의 공통점을 들면서 “할리우드 전쟁 영화의 완벽한 주연 배우”로 묘사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조국을 부흥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로 간주한다. 상대국을 그 꿈을 방해하는 주범으로 지목함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끌어올렸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시진핑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정치 수사임과 동시에 실질적인 강령이기도 하다. 책은 이들이 만들어낸 지도자 중심의 정치 환경이 미·중 간 위기를 더 증폭시킨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단지 위험을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쟁 없이 패권 교체가 있었던 역사적 사례도 제시한다. 15세기 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교황이 설정한 경계선을 수용하면서 충돌을 피했다. 20세기 초, 영국은 신흥 강대국 미국과 전쟁 대신 협력을 택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반복된 전쟁 끝에 유럽통합을 통해 공동체로 탈바꿈했다. 강력한 제도와 상호 인식의 변화는 역사의 충동조차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미국을 향해 “전략 부재”를 지적하면서, 자국의 핵심 이익을 명확히 하고, 상대의 목표를 정확히 이해한 뒤, 이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라고 조언한다. 이 책이 미국뿐 아니라 한국 독자, 특히 외교안보 정책 결정자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 현 정부에서 “전쟁은 필연적이며, 우리는 미국 편에 확고히 서야 한다”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과 균형 감각은 사실상 실종된 셈이다. 최근 한미일 안보 협력에만 집중하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등한시하는 외교 기조가 설명된다.

『예정된 전쟁』은 단순히 미·중 경쟁의 위험을 경고하는 책이 아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철저히 분석하면서도, 그 위험을 피해 갈 수 있는 실마리를 치밀하게 탐색한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함께, 평화에 대한 전략적 낙관을 품고 있다. 외교는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 예술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 책은 바이든 전 대통령, 헨리 키신저, 니얼 퍼거슨, 클라우스 슈밥, 폴 케네디 등 세계적 전문가와 지도자 22인의 추천을 받은 명저로, 그 깊이와 통찰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질문과 통찰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글: 이병록 예비역 제독·국민주권전국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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