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강율 기자] 갤러리 자인제노는 2025년 10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 민병길 작가의 기획전 《심상 풍경 — 존재와 인식, 그리고 감각의 층위》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자연의 외형을 재현하기보다, 그 너머에 놓인 ‘존재의 감각’을 탐구하는 철학적 풍경학의 시도라 할 수 있다. 민병길의 사진은 특정한 장소나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안개 속 산등성이, 멀리 떨어진 나무, 고요한 평야 위의 정지된 사물처럼, 침묵 속에 잠긴 세계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작가에게 있어 풍경은 단순한 시각의 대상이 아니라 ‘있음’의 증거이며,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현전처럼 그저 ‘거기에 있음’으로 충분한 세계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사진 속에서 사물은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한 채 배경 속에 머무르며, 우리는 무엇을 ‘본다’는 사실보다 먼저, 무엇이 우리 안에 ‘감지되고 있다’는 감각에 이끌린다.
전시는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 ‘존재’에서는 사물이 그 자리에 있다는 단순한 사실 자체가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안개와 빛, 정지된 오브제들이 전하는 침묵 속의 울림은 ‘무엇이 실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은 눈앞의 풍경을 넘어 존재의 본질을 체험하게 된다.
사진- 갤러리 자인제노 제공 / 심상풍경 #7_50x70cm_ pigment print_2024
두 번째 섹션 ‘인식’에서는 형태와 의미의 경계가 흐릿한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물음을 제시한다. 이곳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보는 법’ 자체를 묻는 실험이 된다. 들뢰즈가 말한 ‘지각의 생성성’처럼 민병길의 이미지는 완성된 인식이 아닌, 끊임없이 흩어지고 생성되는 인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관객은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의 인식 구조를 마주하게 되고, 풍경을 보는 행위 자체를 성찰하게 된다.
사진= 갤러리 자인제노 제공 / 심상풍경 #18, 50x70cm, pigment print,2024.
마지막 섹션 ‘감각’은 시각을 넘어선 체험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빛의 질감, 여백의 호흡, 흐릿한 윤곽선들이 하나의 감각적 파동으로 이어지며, 관람자는 마치 공기 속 습도와 시간의 온도를 함께 느끼는 듯한 몰입을 경험한다. 이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지각의 살(flesh of perception)’ 개념처럼, 세계가 몸과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살아 있는 접촉면임을 상기시킨다. 민병길의 사진은 바로 그 접촉면 위에 떠 있는 심상의 풍경이며, 외부의 자연을 빌려 내면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은 설명 대신 감응으로, 재현 대신 울림으로 세계를 이야기한다. 관객은 그 앞에서 사유하고 멈추며, 자신 안의 기억과 정서를 비춰보게 된다.
사진= 갤러리 자인제노 제공 / 심상풍경 sea#14_ 85x150cm_ pigment print_2024.
이번 전시 《심상 풍경》은 존재를 감각하게 하고, 인식을 흔들며, 감각의 층위를 따라 우리를 사유의 깊이로 이끄는 여정이다. 풍경은 더 이상 바깥의 경치가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 잠든 이미지로 되살아난다. 그것이 바로 민병길이 사진을 통해 전하고자 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의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