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병수 기자] 국내 경제 관련 법률에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조항이 8,400건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90% 이상은 개인뿐 아니라 법인까지 함께 처벌할 수 있는 양벌규정을 포함하고 있어 기업의 법적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0일 경제 관련 형벌 조항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21개 부처 소관 346개 경제법률에 총 8,403개의 형사처벌 조항이 존재하며, 이 중 7,698개(91.6%)가 법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다. 평균 징역 기간은 4.1년, 평균 벌금액은 6373만원으로 조사됐다.
법 위반행위 중 약 34%는 2개 이상의 처벌이 중복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중 제재 1933개(23.0%) ▷3중 제재 759개(9.0%) ▷4중 제재 94개(1.1%) ▷5중 제재 64개(0.8%)로, 과징금·과태료·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중첩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한경협은 “공정거래법상 단순 정보 교환 행위도 담합으로 추정돼 징역·벌금·과징금·손해배상 등 4중 제재가 가능하다”며 “건축법처럼 사소한 구조물 변경이나 미신고 가설건축물 설치까지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례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화장품법에 따라 기재사항이 훼손된 제품을 판매하거나 진열만 해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미제출하거나 허위 제출할 경우 최대 징역 2년, 벌금 1억5000만원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경협은 이러한 규제가 글로벌 기준과도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OECD 주요국은 담합이나 시장지배력 남용 등 중대한 위반행위에만 형사처벌을 적용하며, 단순 행정 의무 위반은 금전적 제재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중복 제재와 단순 행정 위반까지 형사처벌하는 현 제도는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경영 리스크를 높인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형벌 합리화 정책을 통해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