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한승호 기자]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SK그룹이 창립 73주년을 맞아 창업 정신과 경영의 기본 원칙을 다시 꺼내 들었다.
8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선혜원에서 고 최종건 창업회장과 고 최종현 선대회장을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를 비공개로 열고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 의지를 다졌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주요 계열사 경영진 4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부터 경영진 차량이 선혜원으로 들어섰고, 참석자들은 창업·선대회장을 추모하는 영상 시청과 공간 관람을 거친 뒤 오전 11시부터 비공개 행사에 함께했다. 행사는 추모 성격에 맞춰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메모리얼 데이는 단순한 추모 자리를 넘어 경영의 원점을 다시 짚는 자리라는 점에서 재계의 관심을 모았다. 통상 70주년이나 80주년 같은 10년 단위 기념행사가 주목받는 것과 달리, SK가 73주년에 별도 행사를 열고 창업·선대회장의 메시지를 다시 공유한 것은 최근 경영 환경의 엄중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룹 안팎에서는 고물가·고환율과 지정학적 불안, 사업별 업황 차별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SK가 경영 철학을 통해 조직의 기본기를 다잡으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행사에서는 최종건 창업회장이 강조했던 기업보국 철학과 최종현 선대회장이 정립한 사람 중심 경영 원칙이 다시 공유됐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생전 '회사의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라는 신념 아래 기업의 성장이 사회 전체의 풍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해온 인물로 평가된다.
최종현 고 SK그룹 회장(가운데)/연합뉴스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서양의 합리적 경영 이론과 동양의 인간 중심 사상을 결합한 SK 고유의 경영관리체계 SKMS를 정립했고,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이라는 철학으로 SK 특유의 조직문화를 다져왔다.
SKMS는 단순한 내부 지침이 아니라 SK의 경영 철학과 실행 원칙을 아우르는 체계로, 합의와 공유를 통해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기반으로 여겨진다. 처음 수립된 뒤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며 구성원의 행복과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가치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돼 왔다. 이번 행사에서도 창업·선대회장의 발언을 되새기며 초심으로 돌아가 현재의 불확실성을 돌파하고 그룹의 내실을 다지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선혜원 역시 이번 행사의 의미를 키우는 공간이다. 선혜원은 1968년부터 최종건 창업회장의 사저이자 개인 연구소로 사용됐고, 1990년부터는 SK그룹 인재 육성을 위한 장소로 활용돼 왔다. '지혜를 베푼다'는 뜻의 선혜원이라는 이름도 최종현 선대회장이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는 이 공간을 단순한 기념 장소가 아니라 그룹의 정체성과 경영 원칙을 되새기는 상징적 공간으로 사용해 왔다.
재계에서는 이번 메모리얼 데이를 두고 SK가 실적과 사업 환경이 엇갈리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그룹의 방향성을 점검한 자리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 메모리 수요 확대에 힘입어 호실적 기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배터리와 정유, 통신 등 일부 사업에서는 수익성 부담과 투자 부담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SK가 창업·선대회장의 정신과 SKMS를 다시 전면에 세운 것은 위기 국면일수록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