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강율 기자] 갤러리 자인제노는 오는 2026년 6월 2일부터 6월 15일까지 유재흥 개인전 《도착하지 않은 마음들》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선보여 온 <소포> 연작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 속에서 사라져가는 진정한 소통과 전달되지 못한 감정의 흔적을 조명한다.
유재흥의 작품은 언뜻 보면 실제 우편봉투나 소포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관람자는 예상과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종이로 보이는 봉투는 MDF와 목재를 정교하게 조각하여 제작되었으며, 일부 작품은 스테인리스 주물을 통해 실제 사물의 물성과 무게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극사실주의 조각의 정교함은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관람자의 인식을 끊임없이 흔든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봉투 자체가 아니라 봉투가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이다. 봉투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담고 있지만 그 내용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는 겉모습과 형태만을 통해 내부를 추측할 뿐이며,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도 닮아 있다.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하지만 진심은 쉽게 전달되지 못하고, 수많은 메시지가 오가는 시대 속에서도 정작 중요한 마음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채 남겨진다.
이번 전시 제목인 《도착하지 않은 마음들》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은유이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끝내 전하지 못한 말, 관계 속에서 사라진 감정, 그리고 현대인이 경험하는 공허와 상실이 봉투라는 익숙한 형상을 통해 드러난다. 봉투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전달과 단절, 기대와 부재가 공존하는 상징적 매개체가 된다.
사진= 갤러리 자인제노 제공 Parcel _ Cast Stainless Steel_39x39cm_2024
유재흥의 작업은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오늘날 우리는 실재보다 이미지가 우선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원본보다 복제된 이미지가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작가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조각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 과연 진실인가를 질문한다.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봉투를 보고 있지만 동시에 봉투가 아닌 것을 바라보게 되고, 실재와 재현 사이의 틈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MDF는 종이와 동일한 섬유적 특성을 지닌 재료로서 봉투의 질감과 형태를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구현한다. 나무가 종이처럼 보이고, 조각이 실재처럼 인식되는 순간 관람자의 시각은 착각을 경험한다. 이처럼 작가는 조각과 오브제를 결합하여 현실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현실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를 만들어낸다.
《도착하지 않은 마음들》은 단순한 극사실주의 조각전이 아니다. 그것은 전달되지 못한 감정들에 대한 기록이며, 상실된 소통에 대한 보고서이다. 봉투 안의 내용이 끝내 밝혀지지 않듯 작품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 각자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이번 전시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진심의 흔적을 조용히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