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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도 AI 전환 압박…“기술보다 조직 혁신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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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도 AI 전환 압박…“기술보다 조직 혁신이 관건”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6-02 15:03

BOK 국제컨퍼런스 2일차 논문, 연준 AI 활용 가능성과 영국 국가채무 구조조정 재조명

2026년 BOK 국제 콘퍼런스/연합뉴스
2026년 BOK 국제 콘퍼런스/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중앙은행의 미래 역할을 둘러싼 논의가 인공지능 활용과 정책 신뢰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6년 BOK 국제컨퍼런스’ 2일차 발표 논문들은 중앙은행이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과 국가채무 관리 과정에서의 신뢰 문제를 각각 조명했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는 ‘중앙은행, 그리고 화폐의 미래’다. 2일차에는 ‘인공지능과 연준’과 ‘1717~1722년 영국의 국가채무 구조조정’ 논문이 발표된다. 두 논문은 시기와 소재는 다르지만, 중앙은행과 공공 금융제도가 신뢰를 어떻게 유지하고 제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라는 공통 질문을 던진다.

스탠포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소피아 카지닉 선임연구원과 에릭 브린욜프슨 연구진이 작성한 ‘인공지능과 연준’ 논문은 AI가 통화정책 수립, 금융안정 모니터링, 은행 감독 등 중앙은행의 핵심 기능을 보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상품가격, 위성 이미지 같은 고빈도 데이터를 활용하면 공식 통계의 시차를 보완하고 실시간 경제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안정 측면에서도 AI 활용 가능성이 제시됐다. 대규모 비정형 텍스트를 분석하면 시스템 리스크 신호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다. 다만 AI 에이전트가 시장에 참여할 경우 설계 방식과 목적 함수에 따라 쏠림 현상을 완화할 수도, 반대로 증폭시킬 수도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다.

논문은 중앙은행의 AI 도입이 민간보다 늦어지는 구조적 이유도 짚었다. 중앙은행은 이윤 극대화처럼 단일한 목표를 가진 민간기업과 달리 통화정책, 금융안정, 감독 등 복합적인 공적 목표를 동시에 다룬다. 엄격한 책임성, 관료적 절차, 부서 간 데이터 장벽도 AI 활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AI 활용을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는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 컴퓨팅 인프라 확대, 비상 상황에서의 컴퓨팅 자원 접근권 확보가 제시됐다. 논문은 단순히 장비와 시스템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중앙은행의 업무 프로세스와 제도, 조직 규범을 함께 바꿔야 AI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연준 사례를 활용한 분석에서는 지식 노동 생산성 향상 가능성도 수치로 제시됐다. 논문은 연준 내 360개 직무를 분석해 생성형 AI 도구를 도입했을 때 효율화할 수 있는 노동 시간을 추정했다. 특히 뉴욕연준이 담당하는 공개시장운영 분야에서만 연간 약 117만시간의 업무 효율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역사적 신뢰 문제를 다룬 논문도 발표된다. 프랑수아 벨드 시카고 연준 선임연구위원은 ‘1717~1722년 영국의 국가채무 구조조정’ 논문에서 남해회사 주식 거품 사태를 국가채무 구조조정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18세기 초 영국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등 장기간 전쟁으로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 수준까지 늘었다. 당시 상당수 국채는 만기 전 원금 상환이 어렵고 고금리를 계속 지급해야 하는 구조였고, 영국 정부는 이를 저금리의 조기상환 가능 국채로 전환하려 했다.

특히 1720년에는 국채를 남해회사 주식으로 교환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남해회사 주가가 급등했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뒤늦게 국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벨드 연구위원은 당시 구조조정이 후기 투자자의 자금을 납세자와 초기 투자자에게 이전한 폰지 사기와 유사한 구조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기존 주주와 거품 붕괴 전 주식을 매각한 초기 투자자는 이익을 얻었지만, 후발 투자자는 원금의 최대 절반에 가까운 손실을 본 것으로 평가했다.

이 논문은 영국 명예혁명 이후 의회 권력이 강화되면서 국가채무 상환에 대한 신뢰가 구축됐다는 기존 경제사학계의 통념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위기 상황에서 납세자를 대변하는 의회가 법적 권한을 활용해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는 분석이다.

결국 2일차 발표 논문들은 중앙은행과 공공 금융제도의 두 가지 과제를 나란히 보여준다. 하나는 AI 시대에 중앙은행이 업무 효율과 정책 판단 능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위기 대응 과정에서 공공 권력이 금융시장 신뢰를 어떻게 훼손하지 않을 것인가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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