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금융사기가 진화하면서 피해자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고령층을 겨냥한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투자사기, 로맨스스캠, 가짜 투자앱, 메신저 사기 등이 동시에 확산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 보고서는 금융사기의 본질을 ‘신뢰 유도-개인정보 수집-금전 편취’라는 세 단계로 설명한다. 사기범은 먼저 신뢰할 만한 인물이나 기관을 가장해 피해자의 경계를 낮춘 뒤, 송금 또는 대출 실행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고 최종적으로 자금을 빼내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는 택배 배송조회 문자다. 피해자는 택배회사에서 보낸 것처럼 보이는 QR코드나 링크를 누른다. 이후 악성 앱이 설치되고, 휴대전화 안에 저장된 개인정보와 금융정보가 탈취된다. 사기 조직은 이를 이용해 계좌에서 돈을 빼내거나 대출을 실행한다.
/하나금융연구소
투자사기에서는 신뢰를 쌓는 방식이 다르다. 유명 금융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도용해 가짜 채널 가입을 유도하거나, 초기에 소액 수익을 지급해 피해자의 의심을 낮춘다. 이후 더 큰 금액의 투자를 요구하고, 일정 시점이 지나면 사이트나 채널을 폐쇄한 뒤 잠적한다.
전기통신금융사기와 투자사기는 접근 경로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피싱은 문자와 전화, 메신저 등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채널을 주로 활용한다. 반면 투자사기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메신저, 유튜브 등 정보 탐색 채널을 파고든다. 피해자가 스스로 투자 기회를 찾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다.
청년층은 투자사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거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고수익 정보에 민감한 특성이 맞물리면서 가상자산, 비상장주식, 해외선물, 신기술 투자 등을 내세운 사기에 취약할 수 있다. 일부는 고액 아르바이트나 계좌 제공 제안에 속아 보이스피싱 조직의 공급책이나 전달책으로 연루될 위험도 있다.
고령층은 노후자산을 노린 사기에 취약하다. 은퇴 이후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심리를 이용해 원금 보장, 고정 수익, 특별 투자 기회 등을 내세우는 방식이다. 가족이나 지인을 사칭한 메신저피싱, 공공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도 여전히 주요 위험으로 남아 있다.
2024년 기준 전기통신금융사기 연령대별 피해 비중을 보면 20대 이하와 60대 이상이 모두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사기가 특정 세대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연령층으로 퍼지는 경향이 확인된다.
사기 수법의 고도화는 피해자의 판단 시간을 줄인다. 문자나 전화는 즉각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가짜 투자앱은 실제 거래 화면과 비슷하게 구성된다. 메신저피싱은 가족의 말투와 상황을 흉내 내며, AI 기술은 목소리나 화면 조작까지 가능하게 한다.
비대면 금융환경도 양면성을 갖는다. 모바일뱅킹과 비대면 계좌개설은 금융소비자의 편의를 높였지만, 동시에 사기범이 피해자 정보를 활용해 빠르게 자금을 이동시키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가상자산까지 범죄 수단에 포함되면서 피해금 추적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제도 보완에 나서고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관련 법 체계는 2011년 시행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기반으로 발전해왔으며, 2026년 3월 개정으로 가상자산을 활용한 사기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투자사기 영역에서도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2024년 1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시세조종,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부당이득 산정 기준도 법제화돼 처벌 실효성을 높이는 장치가 마련됐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도 2024년 시행됐다. 이를 통해 가상자산 시세조종, 미공개정보 이용, 사기적 거래행위에 대한 처벌 기준이 마련됐다. 2026년 4월에는 가상자산 출금 지연제도 기준도 강화됐다.
하지만 법 개정만으로는 신종 사기를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다. 로맨스스캠, 거래 사기, 가짜 플랫폼 사기처럼 피해자와 사기범 사이의 심리적 관계를 이용하는 범죄는 사후 처벌보다 사전 탐지가 더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가 스스로 차단 장치를 설정할 수 있도록 ‘3단계 금융거래 안심차단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여신거래 안심차단은 2024년 8월 시행됐고, 비대면 계좌개설 안심차단은 2025년 3월 도입됐다. 오픈뱅킹 안심차단은 2025년 11월 시행될 예정이다.
지연이체 서비스도 부정 출금을 막는 장치로 활용된다. 자금 이체 시 수취인 계좌에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입금되도록 해, 피해자가 사기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지급정지 등 조치를 취할 시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다만 금융사기 예방은 서비스 신청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비자가 최신 사기 수법을 빠르게 인지하고, 비정상적인 거래 요구를 구별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정부와 금융권이 예방 시스템을 강화하더라도 사기범은 계속 새로운 빈틈을 찾기 때문이다.
금융사기는 이제 연령, 직업, 자산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청년층에게는 빠른 수익과 취업 기회로 접근하고, 고령층에게는 안정적 노후와 가족 관계를 파고든다. 피해 양상이 세대별로 달라진 만큼 예방책도 세대별 금융 경험과 취약 지점을 반영해 설계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