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저PBR주를 둘러싼 정책 압박은 2024년보다 더 강해졌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2024년 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에 저PBR주가 먼저 움직였던 것과 달리, 올해는 관련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음에도 반도체 등 일부 성장 업종에 수급이 쏠리면서 저PBR주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모습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발간한 ESG 보고서에서 “2026년 제안되거나 추진되는 정책들은 구체성과 강제성 면에서 2024년보다 더 강력하다고 판단된다”며 “저PBR주를 겨냥했다는 점도 더 명확하지만 최근 저PBR주는 시장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PBR 구간별 상승 종목 개수 비중/자료: FnGuide,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저PBR주는 주가순자산비율, 즉 PBR이 낮은 종목을 뜻한다. PBR은 기업의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와 비교해 어느 수준에서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PBR이 1배보다 낮다는 것은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24년 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정부가 국내 상장사 저평가 해소를 목표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시장은 곧바로 낮은 PBR 업종과 종목에 반응했다.
실제 2024년 1월 민생토론회 전일과 밸류업 프로그램 1차 발표 전일을 비교하면 PBR 0.5배 미만 종목 409개 중 295개, 비중으로는 72%의 주가가 상승했다. PBR 0.5배 이상 1배 미만 종목도 637개 중 306개, 48%가 올랐다.
올해는 같은 저PBR주라도 흐름이 크게 다르다. 연초부터 이달 22일까지 PBR 0.5배 미만 종목 583개 중 상승한 종목은 224개로 38%에 그쳤다. PBR 0.5배 이상 1배 미만 종목은 703개 중 232개, 33%만 상승했다. 2024년에는 저PBR일수록 정책 기대감이 더 강하게 반영됐지만, 올해에는 PBR 구간별 주가 반응 차이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정책 재료가 약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올해 논의되는 정책은 더 직접적이다. 우선 ‘저PBR 기업 리스트’ 공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밸류업 홈페이지에 저PBR 기업 명단을 상시 공표하고, 종목명에 ‘저PBR’ 태그를 붙이는 이른바 ‘Naming & Shaming’ 방식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이 제도가 이르면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기준은 업종 내에서 PBR이 2개 반기 연속 하위 20%에 해당하는 기업 등이 될 수 있다. 다만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공시하고, PBR 현황 진단과 목표 설정, 실행계획 등을 담은 경우에는 일정 기간 공표나 태그 표시에서 제외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기업 스스로 주가 저평가 문제를 설명하고 개선책을 내놓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상속세와 증여세 제도도 변수다. 이소영 의원이 지난해 5월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올해 7월 정부 세제개편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핵심은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의 80%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장주식이라도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고려해 평가하되 순자산가치의 80%를 하한으로 삼는 내용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상장주식의 상속·증여세 평가 때 상속개시일 또는 증여일 전후 각 2개월 평균 시세를 활용한다. 주가가 낮을수록 세 부담이 낮아질 수 있는 구조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나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주가가 낮게 유지되는 것이 상속·증여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른바 ‘주가 누르기’ 유인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PBR 0.8배법 또는 주가누르기 방지법이라는 표현이 붙었다.
자산 재평가 공시도 저PBR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 변화다. 과거에 취득한 토지나 건물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장부가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기업의 실질 순자산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주요 자산의 장부가치와 공정가치 차이를 재무제표 주석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우선 토지에 대해 공시지가를 활용한 공시 의무화가 검토되고, 이후 대상 자산군을 넓히는 방식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잇따라 나왔다. 올해 들어 PBR이 2개 사업연도 이상 연속 1배 미만인 상장사에 기업가치 제고계획서와 이행현황을 작성·공시하도록 하는 복수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세부 내용은 안마다 다르지만, 배당가능이익 처분, 자기주식 취득과 소각, 사업구조 개선 계획 등을 기업이 직접 제시하도록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일부 개정안에는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장법인에 1억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024년 밸류업 프로그램이 자율적 참여와 유도에 가까웠다면, 2026년 논의는 공시 의무와 제재 가능성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시장은 아직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반도체 업종으로 수급이 쏠린 점, 2024년 밸류업 프로그램은 사전에 발표 일정이 알려져 기대감이 집중됐던 점, 일부 상속세 개정 기대가 지난해 이미 주가에 반영됐을 가능성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요인을 감안해도 현재 저PBR주의 소외 정도가 지나치다고 봤다. 정책의 방향이 더 명확해졌고, 기업에 요구되는 대응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데 주가에는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기획 관점에서 보면 저PBR주 문제는 단순히 “싸다”는 투자 아이디어가 아니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기업을 압박할지, 기업들이 배당·자사주 소각·사업구조 개편으로 실제 행동에 나설지, 시장이 이를 다시 주가 재평가 요인으로 받아들일지가 맞물린 구조적 이슈다.
2024년의 밸류업 장세가 기대감의 랠리였다면, 2026년의 관건은 실행 압박이다. 저PBR 기업 명단 공개, 자산 공정가치 공시, 상속·증여세 평가 방식 변화, 기업가치 제고계획 의무화가 현실화될 경우 낮은 주가를 방치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다만 모든 저PBR주가 같은 수혜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PBR이 낮은 기업보다 자산가치가 크고, 배당 여력이 있으며, 자사주 소각이나 사업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환원 확대를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이 더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책 압박이 강해질수록 시장은 저PBR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기업이 실제로 어떤 개선책을 내놓는지를 따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저PBR주의 반등 여부는 정책 발표보다 기업의 대응 속도에 달려 있다. 이름이 공개되고 꼬리표가 붙는 상황을 피하려는 기업이 먼저 움직인다면, 시장의 관심은 다시 저평가 자산주로 옮겨갈 수 있다. 반대로 공시만 형식적으로 제출하고 배당·자사주·사업 재편에서 변화가 없다면 정책 모멘텀은 또 한 번 기대감에 그칠 수 있다.
올해 저PBR주는 아직 시장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은 더 구체적이고 압박 강도는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에 가려 조용했던 저PBR주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은 이미 쌓이고 있다. 남은 변수는 정책이 실제 제도로 이어지는 속도와, 기업들이 주가 저평가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룰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