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우영 기자] 결식아동의 식사를 지원하기 위해 지급되는 급식카드가 일부 지역에서 술·담배 구매나 허위 결제에 사용된 사례가 확인됐다. 반대로 정작 아동이 쓰지 못해 자동 소멸된 충전금도 연간 171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과 보건복지부는 24일 결식아동 급식카드 운영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동급식카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한부모 가정 등 18세 미만 취약계층 아동의 결식 예방과 영양 개선을 위해 지방정부가 발급하는 카드다. 음식점 등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2025년 기준 급식카드를 발급·운영하는 지방정부는 182곳이며, 약 15만명의 아동이 급식카드를 이용하고 있다. 전체 결식아동 급식지원 대상은 2025년 기준 27만2646명이다. 급식카드를 쓰지 않는 지방정부는 단체급식소, 도시락 배달, 반찬 배달 등 다른 방식으로 지원한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진행됐다. 정부는 급식카드를 운영 중인 182개 지방정부의 사용 내역을 분석하고, 17개 광역시·도별로 1~2곳의 시·군·구를 선정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난 것은 급식 목적과 무관한 사용이었다. 17개 광역시·도별 각 1곳의 시·군·구를 표본 조사한 결과, 서울·인천·부산·광주를 제외한 13개 광역 시도에서 급식카드로 술이나 담배를 구매한 내역이 확인됐다.
일부 사례에서는 일반마트에서 초등학생 자녀의 급식카드로 세제, 휴지 등 구매 불가 품목과 함께 담배를 산 내역이 확인됐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과일 등을 사면서 맥주를 함께 결제한 사례도 있었다.
편의점의 경우 술·담배 결제가 시스템상 차단돼 있었지만, 상당수 일반마트에는 같은 수준의 결제 차단 장치가 없어 급식카드로 아동급식과 무관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부적정 업종 사용 현황
허위 결제 사례도 확인됐다. 식당을 운영하는 결식아동의 부모가 자신의 가게에서 급식카드 충전금을 전액 허위 결제한 사례는 55명, 약 1억7000만원 규모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모가 마트 업주와 짜고 급식카드를 맡겨둔 뒤 생활용품을 대량 구매한 사례도 적발됐다.
급식 취지에 맞지 않는 업종 사용도 적지 않았다. 182개 지방정부의 2025년 1월부터 8월까지 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용 카드 15만6548개 중 약 14.0%인 2만1958개가 한 차례 이상 식사와 관련성이 낮은 업종에서 사용됐다.
부적정 업종 결제금액은 약 12억500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카페 사용액이 약 10억9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학원·병원·미용실·세탁소 등 생활시설은 약 1억4000만원, 술집은 약 700만원, PC방·만화방 등 오락시설은 약 500만원으로 조사됐다.
심야시간 사용도 문제로 지적됐다. 2025년 1월부터 8월까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이전에 결제된 금액은 약 92억원으로, 전체 집행액의 4.4%를 차지했다. 심야시간 사용처는 편의점이 약 40억원, 일반음식점이 약 37억원, 카페가 약 3억2000만원 등이었다.
카드 발급과 자격 변동 관리도 미흡했다. 지방정부는 보건복지부 표준매뉴얼에 따라 급식지원 대상 아동을 복지정보 통합시스템인 ‘행복e음’에 등록해 자격 적정 여부를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지방정부는 행복e음에 등록하지 않고 별도 카드발급 시스템으로만 관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충전식 선불카드인 급식카드에 가상의 사용자를 입력해 가상의 이름으로 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구조적 허점도 드러났다.
아동의 시설 입소, 사망, 학교 졸업 등 자격 변동을 제때 반영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부모의 아동학대로 아동이 보호시설에 입소한 뒤에도 부모가 급식카드를 사용한 사례는 14명, 약 550만원 규모로 확인됐다. 아동이 사망한 뒤에도 급식카드가 본인의 식사비 등으로 사용된 사례도 있었다.
반대로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소멸되는 문제도 컸다. 2024년 기준 카드 충전액 중 사용되지 못하고 사라진 금액은 총 171억원으로, 전체 충전금액 약 2207억원의 7.8%에 달했다.
정부는 미사용 원인으로 카드 사용 시 아동이 느끼는 낙인감 우려, 사용 방법 미숙지 등을 꼽았다. 충전금액의 10%도 사용하지 않은 카드도 4811개로 조사됐다.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에 나선다. 우선 술·담배 등 금지 품목 결제 제한 시스템을 일반마트까지 확대하도록 지방정부와 카드사 간 협의를 유도할 계획이다. 결제 제한 시스템 도입이 어려운 소형마트에 대해서는 허위 결제나 생활용품 구매 내역을 수시 점검하는 체계를 마련하도록 할 방침이다.
술집 등 아동 식사 목적에 맞지 않는 업종은 가맹점 등록이 자동 제한되도록 하고, 이미 등록된 가맹점도 업종을 재확인해 부적정 업종은 제외하도록 할 예정이다. 심야시간 이용 제한도 추진된다.
카드 발급과 자격 변동 관리도 강화한다. 보건복지부는 지침 개정을 통해 지방정부 담당자의 행복e음 등록 의무를 명확히 하고, 아동의 시설 입소·사망·학교 졸업 등 변동사항이 있을 때 담당자가 신속히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 알림 기능을 개선할 계획이다.
미사용 충전금이 방치되지 않도록 안내도 강화된다. 카드 발급 때 사용 방법을 충분히 안내하고, 사용액이 적은 아동 가구에는 문자 알림 등을 통해 사용 가능 잔액을 알려 실제 식사 지원으로 이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추진단장은 “지방정부가 급식카드 발급에 치우쳐 관리에는 소홀한 부분이 확인됐다”며 “새로운 지방정부가 시작되는 만큼 아동급식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수엽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아동급식카드의 본래 취지에 맞게 부적절한 품목 결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가맹점을 지속 확대하겠다”며 “아동들이 이용 가능한 식당이나 잔액을 몰라 지원금이 방치되지 않도록 사용자 맞춤형 안내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