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AI를 단순 보조수단이 아니라 업무 수행의 핵심 주체로 재정의해야 조직 생산성 개선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전환의 성패는 기술 도입량이 아니라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얼마나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직원 개인이 AI로 더 빠르게 일하더라도 업무 절차와 평가 기준, 조직 구조, 인력 재배치가 그대로라면 생산성 개선은 일부 부서나 개인의 효율 향상에 머문다. 기업이 AI 생산성 역설을 넘기 위해서는 목표 설정, 업무 재설계, 인프라 구축, 조직 혁신, 역량 강화, 경영진 지원이 하나의 체계로 맞물려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AI 도입 목표의 재정렬이다. 모든 업무에 AI를 넣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AI는 코딩과 수학, 문서 처리 등 일부 과업에서는 강점을 보이지만 물리적 인식이나 상식적 추론 등에서는 성과가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기업은 실행 난이도와 전사적 생산성 개선 효과를 함께 따져 AI를 적용할 영역을 선택해야 한다. 프론트오피스에서는 고객 전환율과 유지율, 백오피스에서는 비용 절감처럼 재무성과와 연결되는 평가 기준을 세워야 한다.
AI를 지식 챗봇으로만 쓰는 방식도 한계가 있다. 조직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면 AI를 질문에 답하는 도구가 아니라 일련의 과업을 수행하는 실행 주체로 재정의해야 한다. 업무 전체 흐름을 세부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 예측·분류 AI, 생성형 AI, 에이전트 AI, 인간 주도 모델 중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 다시 배치해야 한다. AI가 사내 데이터와 업무 시스템, 온톨로지 기반 디지털 트윈과 연결될 때 기업 현안에 맞춘 추론과 실행이 가능해진다.
업무 재설계의 핵심은 현업 주도다. 현업은 투입과 산출, 부서 간 이관, 반복되는 병목을 가장 잘 알고 있다. AI가 어디에 들어가야 실제 문제가 풀리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곳도 현업이다. 기술 조직이 AI 도구를 만들고 배포하는 데 그치면 사내 AI는 다시 범용 도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현업이 업무 흐름을 재구성하고, 기술 조직이 이를 구현하며, 경영진이 목표와 자원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AI 인프라도 플랫폼 수준에서 다시 설계돼야 한다. 직원들이 업무에 맞는 AI 서비스를 직접 설계·운영할 수 있는 전사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 플랫폼은 AI 모델, 내부 데이터, 외부 시스템, 업무 시스템과 연결된 인터페이스 역할을 해야 한다. 직원은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과업에 맞는 AI 서비스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에이전트 운영환경도 중요하다. AI 에이전트는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만큼 목표, 금지·허용 행동, 업무 수행 절차, 인간 승인과 피드백을 통제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에이전트 실행 루프, 도구 호출, 메모리, 실행 샌드박스, 상태 관리자, 안전장치, 관찰가능성·평가 기능이 함께 설계돼야 AI가 안전하고 일관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조직 구조는 목적 중심으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AI는 업무 전체를 통합적으로 처리하고 자동화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부서 간 이관과 조정 과정에서 생기는 병목을 줄여야 한다. 기존 기능별 조직만으로는 AI의 속도에 맞춰 업무를 재편하기 어렵다. 특정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PO·PM 아래 여러 전문가가 모이는 프로젝트 조직이나 매트릭스 조직이 AI 전환에 더 적합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직원 역량 강화는 교육보다 경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AI를 실제 업무에 써보고 효용을 체감하는 ‘아하 모먼트’가 있어야 사용 습관이 만들어진다. 데이터나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는 직원도 쓸 수 있는 노코드·로우코드 환경, 간편한 권한 신청, 우수 사례 공유, 직원 간 활용 경험 전파가 중요하다. 단순 집합교육만으로는 구성원별 역량 차이를 줄이기 어렵고, 실제 업무 활용으로 이어지기도 쉽지 않다.
AI 전환에 따른 불안을 줄이는 소통도 필요하다. 직원들은 AI가 자신의 업무를 줄이는 도구인지,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내는 도구인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재배치 기준과 대상, 역할 변화, 재교육 기회, 내부 이동 가능성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저항을 줄일 수 있다.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방식으로만 인식되면 전사적 확산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경영진 지원은 AI 전환을 지속시키는 핵심 조건이다. AI 도입을 통해 KPI가 개선된 선도기업의 77%는 C레벨 경영진의 지지를 확보한 반면, 하위 50% 기업은 48%만 경영진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AI 전환은 일회성 IT 사업이 아니라 운영체제 혁신에 가까운 중장기 과제다. 초기 비용 증가와 단기 ROI 불확실성을 감수하더라도 경영진이 방향을 유지해야 조직 변화가 가능하다.
선도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AI 도구 도입이 아니라 업무 방식 전환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 AI 기업 Creao AI는 통상 6주가량 걸리던 IT 개발 과정을 하루 안에 완료하고 일평균 3~8회 서비스 배포를 진행했다. 기획자가 AI에 목표와 맥락, 제약 조건을 제시하면 여러 AI 에이전트가 계획 수립, 코드 작성, 검토, 테스트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이다. 업무 병목이던 품질 검증 시간이 줄어들면서 기획과 마케팅 등 다른 부서의 업무 속도도 함께 빨라졌다.
미국 핀테크 기업 Ramp는 전사적 AI 채택을 가속화한 사례로 제시됐다. 조직 내 AI 사용량은 직전 연도 대비 6300% 증가했고, 직원의 99.5%가 AI를 이용했다. 직원의 84.0%는 코딩 에이전트를 활용해 1500개 이상의 내부 앱과 서비스를 개발했다. 비기술직군의 코드 변경 요청도 전체의 12%를 차지했다. 쉬운 온보딩, 사용 실태 공개, 건전한 경쟁, 단계적 학습곡선 설계가 전사 확산을 만든 요인으로 분석됐다.
팔란티어 사례는 AI가 성과를 내기 위해 기업 현안을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운영 모형과 통합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온톨로지는 고객, 직원, 제품, 업무 등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의 속성과 관계, 행위를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구조화한 디지털 트윈이다. AI가 온톨로지와 결합하면 흩어진 데이터를 단순 검색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 상황을 반영한 의사결정 지원이 가능해진다.
AI 네이티브 조직에 대한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핀테크 기업 Block의 잭 도시 CEO는 조직 운영이 인간 중간관리자 중심의 위계에서 AI와 월드모델 기반의 지능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회사와 고객에 대한 독점 데이터로 만든 디지털 트윈이 조직 상태를 파악하고, AI가 솔루션을 제시하며, 직원은 인프라 구축과 구체적 문제 해결, 훈련과 코칭에 집중하는 구조다.
물론 모든 기업이 곧바로 AI 네이티브 조직으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AI를 기존 업무에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AI가 실제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목표를 정렬하고, 업무 흐름을 다시 설계하고, 데이터와 시스템을 연결하며, 조직과 인력을 함께 바꿔야 한다. AI 전환의 본질은 ‘도구 구매’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재건’이다.
기업들이 AI 생산성 역설을 넘어서려면 도입 건수나 사용량보다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어떤 업무에 AI를 적용할지, 어떤 지표로 성과를 측정할지, 누가 결과를 검토하고 책임질지, 확보된 시간을 어디에 재배치할지까지 정해야 한다. AI는 이미 개인을 빠르게 만들고 있다. 이제 관건은 조직이 그 속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바꾸는 일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