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기대감이 커지면서 플랫폼·금융 업계가 앞다퉈 상표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관련 제도 도입 전 상표권을 선점해 향후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주요 핀테크 기업은 물론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신한금융지주, 케이뱅크, 신한카드 등 시중은행과 카드사들도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잇달아 출원했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건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다. 카카오페이는 ‘PKRW’, ‘KKRW’, ‘KRWK’ 등 6개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세 가지 상품 분류로 나눠 총 18건을 출원했다. 네이버페이도 자체 지갑 플랫폼인 ‘Npay 월렛’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 생태계 확장 의지를 밝히며 5개의 상표를 선제적으로 등록했다.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KRWV’, ‘TKRW’, ‘KRVV’ 등 총 8건의 상표를 출원했다. 토스 측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면밀히 검토 중이며, 그 일환으로 상표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대감에 주가가 급등하면서 한때 주식 매매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네이버페이는 지난달 26일 ‘10주년 미디어데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 계획도 공개했다. 현재 네이버페이는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와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규제 환경에 맞춰 세부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전통 금융권도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카드사 중 최초로 ‘SHCw’, ‘SKRW’, ‘SHWON’ 등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 8건을 출원했다. 상표는 암호화폐 중개업, 토큰 발행 및 회수업, 화폐이체업 등으로 분류됐다. 신한금융지주 역시 지난달 26일 ‘KRWSHB’, ‘SFGKRW’ 등 21건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출원하며 그룹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KBKRW’, ‘KRWKB’, ‘KBST’ 등 4개의 상표를, 하나은행도 ‘HanaKRW’, ‘KRWHana’ 등 2건을 출원했다. 카카오뱅크도 ‘BKRW’, ‘KRWB’ 등 4건을 등록하며 인터넷은행도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가장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곳은 케이뱅크다. 케이뱅크는 ‘K-STABLE’이라는 브랜드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 중이며, 지난달에만 총 12건의 상표를 출원했다. ‘KSTABLE’, ‘KSTA’, ‘KBKKRW’, ‘KSTC’ 등 다양한 표기 방식과 티커(약어)를 확보해 향후 월렛, 송금, 결제, 수탁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 전반에 적용할 계획이다.
케이뱅크는 지난 6월 오픈블록체인·DID협회에도 가입하고, 스테이블코인 기반 해외송금 실증사업 ‘팍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기술 내재화와 제도 대응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선 “제도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발행·유통 계획을 공식화하기 어렵지만, 상표권을 미리 확보해둘 필요는 충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간편결제 시장에서 확보한 인프라와 사용자 기반을 활용해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규제가 명확해지는 순간 플랫폼·금융사 간 시장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지금은 사실상 ‘포지션 선점’ 단계로, 상표권 확보 경쟁이 그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 관련 법적 틀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상표권 경쟁이 제도화 이후 어떤 사업 모델로 이어질지, 그리고 실제 발행 주체와 유통 채널은 누가 될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