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경호 기자] 캠핑 인구 700만 시대, SNS를 타고 퍼진 ‘노지 캠핑’ 열풍이 산·계곡·하천·도시 하천까지 파고들면서 환경 훼손과 주민 갈등, 안전사고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와 정부·지방자치단체 단속 결과에서는 최근 1년 사이 불법 야영과 차박이 급증했지만, 부처·법령이 제각각이라 관리 공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제주도민이 23일 제주도청 홈페이지에 올린 불법 캠핑 현장 사진. 제주도청 홈페이지 캡처
■ 오름·계곡·하천까지…SNS가 키운 ‘노지 캠핑’ 열풍
최근 1년 사이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이른바 ‘감성 캠핑’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자연공간이 사실상 불법 캠핑 명소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의 대표 오름인 큰노꼬메오름과 인근 노꼬메오름 일대에는 야간에 텐트를 치고 술을 마시며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 각종 플랫폼에 공유되며, 예약·이용료 없이 즐기는 노지 캠핑 장소로 알려졌다.
제주도는 이 지역에서의 캠핑·취사 행위가 자연환경보전법과 산림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며, 적발 시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잇따른 민원 속에 해당 오름 일대는 출입·취사·야영 제한 구역으로 고시됐고, 도는 산불감시원 등을 투입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여름철 계곡과 하천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도는 지난 여름 주요 계곡·하천 270여개 휴양지를 대상으로 불법 평상 설치, 무허가 영업, 미등록 야영장·숙박시설 등을 집중 단속했다. 하천구역 내 무단 설치물과 불법 야영·취사, 무허가 하천수 사용 등이 주요 적발 대상이었다.
산림청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산간 계곡 주변 불법 시설물과 취사·쓰레기 투기를 겨냥한 합동 단속에 나섰다. 타인 산림에 평상 등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산림에 오물을 버리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단속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강원 춘천시 삼악산 전망대에서 오가는 길까지 막고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목격돼 공분을 산 것과 관련해 춘천시가 일출 명소를 점령하는 캠핑족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사진=춘천시 제공
■ ‘공짜 캠핑장’ 된 주민 쉼터…쓰레기·소음 민원 폭증
도시 하천과 주민 쉼터는 ‘공짜 캠핑장’으로 변신 중이다. 강원 원주의 한 하천변 쉼터는 지자체가 주민을 위해 식수대와 간이 화장실을 설치한 곳이지만, SNS를 통해 ‘무료 캠핑 명소’로 알려지면서 여름철마다 텐트와 차량으로 가득 차는 장소가 됐다.
문제는 이용자 증가에 비례해 생활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단 주차와 쓰레기 투기, 심야 고성방가에 대한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자체는 “캠핑 전용 시설이 아닌 쉼터라는 이유로 명확한 단속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주민 편의를 위해 조성한 공간이 외지 캠핑족에 사실상 점령되면서 정작 지역 주민이 발길을 돌리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노지 차박(차량 숙박)도 급증세다. 최근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집계된 차박 단속 사례는 3633건으로, 이 가운데 항·포구가 3293건, 강변 180건, 공영주차장 44건 등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차박 관련 민원도 16건에서 57건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현행 주차장법은 공영주차장 내 야영·취사·화기 사용만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을 뿐, 도로변 공터·항만·공원 등에서 이뤄지는 노지 차박은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도로법 역시 도로 파손과 교통 방해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지자체들은 자체 조례를 통해 제한적인 단속만 진행하는 실정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도로변 차박으로 민원이 폭증했지만 법적 근거가 부족해 강제 조치가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사진=연합뉴스
■ 선자령, ‘백패킹 성지’가 남긴 대소변·쓰레기·소음
강원 대관령 선자령은 국내 백패킹족 사이에서 이른바 ‘성지’로 불릴 만큼 노지 캠핑 수요가 몰리는 대표 장소다. 해발 1000m를 넘는 초지 능선과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진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이면 정상부 일대에 텐트가 빼곡히 들어선 사진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 올라온다.
그러나 선자령은 인기만큼이나 ‘생활환경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동시에 받고 있다. 정상부 박지 주변에는 상시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사실상 없는 탓에 일부 캠퍼들이 인근 숲과 풀숲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이 과정에서 휴지와 물티슈를 그대로 버리고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 이른바 ‘휴지밭’이 형성된 구간이 상시 목격될 정도로, 자연환경뿐 아니라 위생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야간에는 소음 피해도 심각하다. 풍력발전기 소음 위로 스피커 음악과 고성방가가 겹치면서, 선자령 일대는 사실상 ‘소음 캠핑장’으로 변한다. 일부 캠핑객들은 새벽까지 술자리를 이어가며 노래를 부르거나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취사 과정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와 각종 포장재가 제대로 수거되지 않은 채 방치되기도 한다. 악취는 물론, 야생동물을 유인해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자령 사례는 노지 캠핑이 단순한 개인 취미의 영역을 넘어, 최소한의 화장실·쓰레기 처리 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수요만 폭발할 경우 자연과 인근 이용자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떠넘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연합뉴스
■ 국립공원·산림도 몸살…법은 있는데 관리 공백
국립공원과 산림에서도 ‘법은 있는데 관리가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자연공원법은 국립공원 내 지정된 장소 밖에서의 야영·취사·흡연, 오물 투기, 지정 외 장소 주차 등을 금지하고 위반 시 최대 2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최근 3년간(2022~2024년) 자연공원법 위반 건수는 연평균 8000건을 웃도는 수준이며, 이 가운데 약 30%가 7~8월 여름철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공원 내 불법 주차·취사·오물 투기·야영이 성수기마다 반복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캠핑 인구가 70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산 정상과 전망대 등에서의 불법 야영 확산 문제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산림청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경부·문화체육관광부 등과의 협의가 충분치 않아, 국립공원·자연휴양림·산림휴양시설 등 관리 주체별로 단속 기준이 엇갈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불법 캠핑은 산불 위험과도 직결된다. 산림청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산불의 상당수가 입산자 부주의와 불법 화기 사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산림청은 불법 취사·불 피우기 금지, 인화물질 소지 제한 등을 거듭 알리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야간 숯불과 화기 사용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속리산 불법 야영 현장 [속리산사무소 제공 = 연합뉴스]
■ 환경·안전·형평성 모두 흔드는 ‘공짜 야영’의 그림자
불법 캠핑이 남기는 흔적은 사진 속 ‘감성’이 아니라 현실의 비용이다. 계곡·하천 주변에 버려지는 각종 쓰레기와 미처리 오수는 수질 오염과 악취 민원으로 돌아온다. 일부 지자체는 야영장 오수 처리 시설에 대한 특별 점검을 실시하며, 하천으로의 오수 무단 방류와 방류수 수질 기준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데 행정력을 쏟고 있다.
도로변·항만 차박은 교통 안전 문제도 키운다. 노상주차장과 도로변에 장시간 차량을 세우고 텐트와 테이블을 설치하는 행위는 통행 방해와 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영주차장 내 야영·취사 행위에는 최대 5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바로 옆 공터·항만에서 벌어지는 유사 행위는 법령 공백 탓에 막기 어려운 ‘풍선 효과’가 나타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평성 문제도 크다. 정식 캠핑장은 법에 따라 오수 처리 시설과 소방·안전 설비를 갖추고, 환경관리 비용을 감당하면서 이용료를 받는다. 반면 불법 노지 캠핑은 이용료를 내지 않으면서 쓰레기 처리·환경 복구·민원 대응 비용을 주민과 지자체에 떠넘기는 구조다. 장기적으로는 합법적인 캠핑장 운영 의지를 꺾고,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역설을 낳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 홍천군 서면 충의대교 아래 홍천강 일대에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 법령 정비·공영 인프라·문화 개선 ‘3박자’ 필요
전문가들과 현장 공무원들은 불법 캠핑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령 정비 △공영 캠핑 인프라 확충 △캠핑 문화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법령부터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에서는 차박 단속 건수가 불과 몇 년 사이 수십 배 증가하고, 관련 민원도 해마다 늘고 있다며 “단속 규정이 없는 곳에서 차박이 이뤄지면서 통행 방해와 환경 훼손 사례가 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캠핑·차박 관련 법령을 보다 구체화해 건전한 이용 문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립공원(자연공원법), 산림(산림보호법), 하천(하천법), 도시공원(각 지자체 조례) 등으로 흩어진 규제를 정비해, 어디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통합 캠핑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리 주체가 다르더라도 기본 금지 행위와 과태료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고, 지자체가 현장에서 즉시 적용할 수 있는 단속 권한을 명확히 하자는 제안이다.
허용 구역을 늘리는 것도 해법으로 꼽힌다. 무분별한 노지 캠핑을 막으려면 ‘어디서 하지 말라’가 아니라 ‘어디서 하면 된다’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캠핑 수요가 많은 해변·댐 주변·도시 하천 등에는 차량 전용 공영 차박 구역과 소규모 야영 데크를 설치하고, 사전 예약제와 사용료를 통해 관리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일부 지자체가 계곡·하천 불법 시설 단속과 병행해 안전한 이용 공간을 정비하는 것처럼, 공영 인프라를 통해 수요를 흡수하자는 접근이다.
캠핑 문화 개선도 필수 과제다. 쓰레기 되가져가기, 지정된 곳 외 야영 자제, 산에서의 불 피우기 금지 등 기본 수칙은 더 이상 ‘선택적 매너’가 아니라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유튜브·SNS 인플루언서들이 불법 노지 캠핑을 ‘인생샷’으로 소비하는 관행을 줄이기 위해, 플랫폼과 연계한 공익 캠페인과 자율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주민과 함께 관리하는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민이 참여하는 ‘캠핑 지킴이’ 제도나 주민 위탁 운영 캠핑장, 신고 앱 기반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통해 현장 감시망을 촘촘히 하고, 주민이 불법 캠핑의 피해자가 아니라 합법적 캠핑 문화의 파트너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 캠핑족을 없애는 일은 단속 강화만으로는 어렵다. 어디까지가 허용이고 어디서부터가 불법인지 명확히 하고, 이용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과 책임을 제도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 그리고 ‘자연을 빌려 쓰는’ 캠핑의 기본 상식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