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이설아 기자] 국내 주요 제당사들이 음료·과자 제조사 등 실수요처를 상대로 설탕 판매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드러나 4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3개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가 4년여간 설탕 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시기를 합의·실행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4083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제당사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8차례(인상 6차례, 인하 2차례)에 걸쳐 음료·과자 업체와 대리점 등 B2B 거래에 적용되는 설탕 가격 변경의 폭과 시기 등을 사전에 합의했다. 원당 가격이 오를 때는 인상 시점과 인상 폭을 맞춰 원가 상승분을 신속히 반영하고, 인상에 반발하는 수요처에는 3사가 공동 대응해 가격 인상을 관철했다. 반대로 원당 가격이 내릴 때는 인하 폭을 작게 잡고 인하 시기를 늦추기로 합의해 가격 하락을 최소화했다.
담합은 대표이사, 본부장, 영업임원, 영업팀장 등 직급별 모임과 연락을 통해 치밀하게 이뤄졌다. 대표·본부장급 회의에서는 전반적인 가격 인상 방안과 3사 간 협력 방향을 논의했고, 영업임원·팀장들은 많게는 월 9차례까지 모임을 갖고 인상·인하 시기, 거래처별 협상 일정, 협상 난항 시 공동 대응 방법 등 세부 실행계획을 짰다. 이후 각 제당사는 거래처에 가격 변경 계획을 통지하고 협상을 진행했으며, 수요처별로 점유율이 가장 높은 제당사가 협상을 주도하고 그 경과를 나머지 두 회사와 수시로 공유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합의가 지속되면서 제당사들이 원당 가격이 오를 때는 한 번도 실패 없이 가격 인상을 관철하고, 원당 가격이 내려갈 때는 설탕 가격 인하를 회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설탕이 대규모 설비와 높은 관세로 진입장벽이 큰 시장인 점을 악용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으면서도 담합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했고, 그 부담은 음료·과자 제조사 등 수요 기업과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것이다.
이번 제재는 과징금 총액 기준으로 공정위 담합 사건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사업자당 평균 부과액(1361억원)으로는 역대 최대다. 제당사들은 이미 2007년에도 유사한 설탕 가격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다시 담합을 벌였고, 2024년 3월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에도 1년 이상 담합을 유지하면서 조사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9~11월 3개 법인과 임직원 11명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번에는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 가격 변경 현황 보고명령 등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추가로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식료품 가격 부담이 큰 상황에서 설탕 가격의 인위적 인상 요인을 바로잡고, 과점 구조를 이용한 담합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밀가루, 전분당, 계란, 돼지고기 등 현재 심사 중인 다른 식료품 담합 사건도 신속히 처리해 위법이 확인될 경우 엄정 제재를 예고했다. 공정위는 “담합은 공정한 경쟁질서를 훼손하고 다수 경제주체에 피해를 주는 중대한 불공정 행위인 만큼 강력한 경제적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