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부·울·경 취재본부 김지윤 기자] 정치의 계절은 때로 상식의 경계를 허문다. 최근 부산의 선거 캠프 앞 보도블록 위 가로수가 처참하게 '삭발'당한 현장 스케치는(5월10일 기준) 우리 정치의 일그러진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후보자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 그 환한 미소를 가로막던 푸른 잎사귀들은 간데없고 앙상한 밑동만 남은 조경수의 모습은 보는 이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통'이자 '합리적 보수'의 기수다.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 교수, 17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그의 궤적은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며 '정책'과 '비전'을 향해 있다.
지난 3월 23일, 국회앞에서 ‘부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며 삭발했다. 그의 '삭발'은 보수 진영을 재정비하는 정치적 배수진이자 결기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현장에서 벌어진 가로수의 '삭발'은 그 궤를 전혀 달리한다.
정치적 문법으로 볼 때, 이번 사안은 전형적인 '과잉 충성'의 소치로 읽힌다. 현직 시장이자 유력 후보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더 잘 보여야 한다는 조급함이, 시민의 자산인 가로수를 베어내는 무리수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캠프의 직접적인 지시였는지, 아니면 시장의 눈치를 본 하부 조직의 '자발적 조치' 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공적 영역의 가치를 사적 홍보를 위해 훼손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상, '현 시장이 재선이나 삼선을 도전할때 행정공백을 이유로 사퇴시한 전까지 현직시장을 유지한채 선거를 치를수 있는 현직 프리미엄의 단면을 보게 하는것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자아내게 한다.
이 사안의 엄중함은 단순한 환경 훼손을 넘어선다. 한 식물학 전문가 A씨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경수의 무분별한 가지치기는 수목의 자생력을 파괴하고 도시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라며, "특히 특정 시설물을 노출시키기 위한 목적의 전지는 식물학적 근거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나무가 잘려 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후보의 선명한 얼굴이 아니라, 훼손된 공공성이다.
해운대에서 자영업을 30년째 한다는 B씨는 "1층에 장사하는 사람치고, 가지치기의 유혹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것이다."라며 시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이러한 일이 자행된것에 허탈함을 느낀다고 토로하며, "매년 비슷한 시기에 다 같이 이루어져야할 가지치기가 캠프앞 조경수만 가지치기를 한것에 무력감을 느낀다"라고 성토했다.
박형준 캠프는 본 사안과 관련된 과잉 충성 논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진정성 있는 해명과 책임 있는 사후 조치를 내놓는 것이 '글로벌 허브 도시' 를 추구하는 부산 수장의 도리다. 유권자는 현수막 속의 미소보다, 그 미소를 가리기 싫어 나무를 베어버린 무감각한 권력의 칼날을 먼저 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6.3 지방선거를 20여일 앞둔 5월 중순, '낮시간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시대적 소명은 나무를 베어 시야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속 그늘을 만드는 정치를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