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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AI 경쟁 커지는데…한국 산업정책은 ‘저규모·분산형’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7-02 09:05

산업연구원, OECD QuIS 기반 정량 분석…2023년 재정지원 GDP 대비 1.06%, OECD 평균 1.55% 밑돌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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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글로벌 산업정책 경쟁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불안이 반복되고, 디지털·녹색 전환과 경제안보가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주요국은 산업정책을 다시 전면에 세우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AI, 미래차, 핵심 원자재를 둘러싼 경쟁은 더 이상 기업 간 경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각국 정부의 보조금, 세제지원, 금융지원, 규제 대응이 결합된 ‘국가 대 국가’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산업정책은 규모와 집중도 모두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책 사업 수는 많지만 개별 사업 규모가 작고, 지원도 여러 분야로 분산돼 있어 전략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이라는 새 산업정책 환경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한국 산업정책의 정량 분석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 OECD의 산업정책 정량화 프로젝트인 QuIS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산업정책의 규모와 구조를 분석했다.

보고서는 먼저 산업정책이 다시 국가 핵심 정책 수단으로 부상한 배경을 짚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렸고, 주요국은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 첨단산업 주도권 확보, 경제안보 강화를 위해 자국 중심의 산업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을 중심으로 전략산업 지원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산업정책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필요성도 커졌다는 것이다.

한국과 OECD 산업정책 지출 비교
한국과 OECD 산업정책 지출 비교

문제는 한국의 산업정책 지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이다. OECD QuIS 분석에 따르면 20개 회원국의 산업정책 부문 재정지원은 2019년 GDP 대비 1.34%에서 2023년 1.55%로 늘었다. 보조금과 조세지출을 합친 재정지원이 최근 들어 뚜렷하게 증가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2021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의 산업정책 부문 재정지원은 2019년 GDP 대비 0.89%에서 2021년 1.37%까지 높아졌지만 이후 줄어 2023년에는 1.06%를 기록했다. OECD 평균 1.55%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금융지원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OECD 평균 금융지원은 2020년 GDP 대비 1%를 웃돈 뒤 낮아져 2023년 0.92%를 기록했다. 한국 역시 2020년을 정점으로 감소했고, 2023년에는 GDP 대비 0.49%에 그쳤다.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다만 수출금융은 예외였다. 한국의 수출금융 지원 규모는 OECD 평균보다 약 2배 안팎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한국의 산업정책 관련 금융지원이 단기 수출금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수출 중심 경제 구조가 반영된 결과지만, 동시에 산업정책의 장기 투자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원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산업정책은 ‘저규모·분산형’이라는 특징이 강했다. OECD 국가별 산업정책 규모와 집중도를 비교한 결과, 한국은 20개 분석 대상국 중 중간값보다 낮은 규모와 집중도를 보였다. 정책 사업별 재정지출을 바탕으로 집중도를 평가한 허핀달-허쉬만 지수에서도 한국은 칠레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쉽게 말해 사업은 많은데, 한 사업당 투입되는 자원은 작다는 뜻이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이 비교 대상국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의 개별 정책 사업 수를 보였지만, 개별 사업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책 지원이 다수 사업에 흩어져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과거에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고 기업활동 전반의 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은 글로벌화와 WTO 체제 아래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정책 방식이었다. 실제 한국 산업정책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직접 선택해 집중 지원하는 수직적 산업정책보다 모든 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수평적 산업정책 비중이 높았다.

2023년 기준 한국 산업정책 재정지원 지출은 GDP 대비 1.06%, 금액으로는 25조400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수평적 정책 비중은 65.0%, 수직적 정책 비중은 35.0%로 나타났다. 산업환경 개선, 기술혁신, 구조조정, 경쟁 촉진 등 기업활동 전반을 지원하는 정책이 중심이었다는 의미다.

한국과 OECD 평균 수출금융 지원 규모 비교
한국과 OECD 평균 수출금융 지원 규모 비교

하지만 최근 글로벌 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은 달라지고 있다. 주요국은 AI, 반도체, 배터리, 미래차 등 특정 첨단전략산업을 겨냥해 대규모 지원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급망 안정과 기술패권 경쟁이 맞물리면서 ‘모든 산업에 조금씩’ 지원하는 방식만으로는 전략산업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국도 수직적 정책 안에서는 제조업 중심 지원이 두드러졌다. 소재·부품·장비 R&D 등 제조업 분야 지원이 중심을 이뤘고, 비제조업이나 신산업 영역으로의 확장성은 제한적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수평적 정책 중심이라 집중도가 낮고, 수직적 정책 안에서는 제조업 편중이 존재하는 셈이다.

산업정책 분야별로는 기술 부문과 중소·신생기업 지원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재정지원 측면에서 R&D와 기술 분야 지출은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산업정책 투입 측면에서도 기술·훈련 분야 지원은 비교적 두드러졌다. 반면 기업의 설비투자와 밀접한 고정자본 지원은 낮은 수준으로 관찰됐다.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 산업정책은 수출금융과 R&D, 중소기업 지원에서는 일정한 강점을 보였지만, 전체 산업정책의 규모는 작고 구조는 분산돼 있다. 주요국이 첨단산업과 공급망을 중심으로 산업정책을 키우는 상황에서 한국도 정책의 양과 질을 동시에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정책은 다시 국가 경쟁력의 핵심 수단이 됐다. 그런데 한국의 정책 도구는 여전히 과거의 수출 중심, 분산형, 수평형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글로벌 산업정책 경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든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사업 추가가 아니라 산업정책 체계 자체의 재설계라는 지적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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