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2026.08.23 (일)

더파워

[한글 특집 비평 : 금보성비엔날레] 한글이 문화가 된다는 것

메뉴

문화

[한글 특집 비평 : 금보성비엔날레] 한글이 문화가 된다는 것

최성민 기자

기사입력 : 2026-08-23 11:10

-소유한 문자에서 생성하는 문화로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한글을 가진 것과 한글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문화의 생명력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얼마나 독창적인 기원을 가졌는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유산이 현재의 창작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새로운 가능성을 허용하고 있는가이다.

-문화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의 구조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에 대한 질문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문자인가.
누가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중요하지만 이미 충분히 논의되어 왔다.
동시대미술이 요구하는 질문은 그다음에 있다.
이 문자는 지금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금보성비엔날레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질문을 회화의 내부로 가져온다는 데 있다.
금보성에게 한글은 설명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기보다 끊임없이 변형할 수 있는 시각적 체계에 가깝다.
그의 작업을 평가해야 하는 기준 역시 한글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했는가가 아니다.
한글이라는 문자체계가 그의 작업을 통과하면서 이전에 없었던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바로 그것이 문제다.

-문화유산의 반대말은 변화가 아니다

문화유산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보존’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미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살아남은 문화는 대부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재즈는 반복 연주가 아니라 즉흥과 변주를 통해 확장되었고, 대중문화의 이미지는 팝아트 안에서 원래의 기능을 잃고 새로운 미술언어가 되었다. 거리의 낙서와 서브컬처 역시 미술관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시각문화의 계보를 만들었다.

문화의 힘은 원형을 영원히 반복하는 데 있지 않다.
변형된 이후에도 새로운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가에 있다.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언제나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남겨두어야 한다면, 그것은 문자에 대한 존중일 수는 있어도 예술의 조건은 아니다.

예술가는 문자를 확대할 수 있고, 분해할 수 있으며, 뒤집거나 겹칠 수 있다. 획을 떼어낼 수도 있고, 의미를 제거할 수도 있으며, 글자를 화면 밖의 공간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한글이 얼마나 온전하게 남아 있는가가 아니다.
변형 이후 무엇이 새롭게 발생했는가이다.

-읽을 수 없게 되는 순간, 한글은 다른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 관객에게 한글은 지나치게 익숙하다.
우리는 ㄱ을 보는 순간 기역이라고 읽고, 글자를 보는 순간 단어를 찾으며, 단어를 만나면 곧바로 의미로 이동한다.
문자를 ‘보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짧다.
금보성의 작업은 바로 이 자동화된 독서를 방해한다.
자음이 분리되고 획이 확대되며 색과 면 사이로 흩어지는 순간, 관객은 익숙했던 독서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난다.

읽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이다.

관객은 의미 대신 방향을 보고, 발음 대신 색을 경험한다. 단어 대신 면의 충돌을 바라보고, 문장 대신 공간의 리듬을 따라간다. 따라서 금보성 작업에서 ‘읽을 수 없음’은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문자에 지나치게 익숙한 한국 관객에게 한글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관객에게는 상황이 반대다.
한글을 모르는 관객은 애초부터 읽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과 색, 반복과 분절, 밀도와 공간을 먼저 경험한다. 한국 관객은 문자에서 미술로 이동하고, 미국 관객은 미술에서 문자로 이동한다.

이 두 개의 반대 방향이 하나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금보성 한글회화가 국제적인 맥락에서 검증해볼 만한 중요한 지점이다. 모든 작가는 이해되고 보여 주는 회화를 하였다면 금보성은 한국인들의 정신이라는 한글을 사용하되 문맹인(文盲人)만들어 버렸다.

-세계화는 번역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외국인이 한국문화를 얼마나 잘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반드시 완전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때로 예술은 이해 이전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미국 관객이 한글을 읽지 못한다고 해서 한글회화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악보를 읽을 필요가 없듯, 문자를 이용한 미술을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그 언어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한글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한글이 한국어를 전달하는 기능을 잠시 내려놓고 색, 선, 면, 리듬, 물질, 신체와 공간을 조직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언어 사용자만의 영역에 머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한글의 세계화는 세계인이 한글을 읽게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오만이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한글로부터 하나의 미적 경험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
현대미술이 한글에 제공할 수 있는 세계화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글’이라는 이름이 작품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비평은 한 단계 더 엄격해져야 한다.
한글이라는 문화적 가치가 작품의 미술적 가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글을 사용했다는 사실과 좋은 현대미술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금보성의 작업 역시 동일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한글이라는 설명을 제거해도 화면은 긴장을 유지하는가.
거대한 규모를 제거해도 조형적 논리는 남는가.
한국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에게도 작품은 시각적 경험을 발생시키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한글이 작품을 장식하는가, 아니면 작품을 발생시키는가.
전자는 한글을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후자는 한글의 구조로부터 새로운 회화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금보성 한글회화의 미술사적 가능성은 바로 이 차이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증명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금보성 /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금보성 /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한 작가의 스타일에서 하나의 문화로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금보성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조형언어라면 그것은 강력한 개인 양식이 될 수는 있어도 아직 문화적 생태계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문화는 질문이 전염될 때 시작된다.
다음 세대의 작가가 금보성의 색채나 구성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한글을 해체하고, 어떤 작가는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또 다른 작가는 건축·영상·퍼포먼스·인공지능 속에서 새로운 한글을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 금보성의 한글미학 자체를 부정하는 작가도 등장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다.
문화의 계승은 복제가 아니라 차이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보성비엔날레의 장기적인 의미도 얼마나 많은 작품을 전시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전시가 얼마나 많은 후속 질문을 만들어내는가이다.

-비엔날레는 작품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질문을 생산하는 곳이어야 한다

미국의 주요 현대미술 기관에서 전시는 더 이상 작품을 벽에 걸어놓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시는 연구와 교육, 출판과 토론, 관객 참여와 비평이 동시에 작동하는 플랫폼이 된다.
금보성비엔날레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글을 보여주는 전시에서 한글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작품과 함께 비평이 존재하고, 교육이 뒤따르며, 다른 작가의 실험과 충돌하고, 국제적인 연구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한글을 해석할 수 있는가.
그렇게 된다면 비엔날레의 의미는 한 작가의 회고적 성취를 넘어선다. 개인의 작업실에서 시작된 질문이 공공의 문화적 질문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금보성에게도 가장 위험한 것은 성공한 금보성이다

오랫동안 하나의 언어를 연구한 작가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은 자신의 방법이 인정받기 시작할 때다.
성공한 형식은 반복하고 싶은 유혹을 만든다.
그러나 어제의 혁신을 오늘 반복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스타일이 되고, 반복이 계속되면 스타일은 공식이 된다.
따라서 금보성에게 앞으로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어쩌면 한글을 다시 해체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이 만든 ‘금보성의 한글’을 해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음의 해체가 하나의 방법으로 정착했다면 그다음에는 그 방법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평면에서 공간으로 이동했다면 공간 이후를 질문해야 한다. 거대화를 경험했다면 더 큰 작품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감각을 찾아야 한다.

한 작가가 자기 성공의 문법을 스스로 파괴할 수 있을 때 작업은 다시 살아난다.
이 점에서 비평은 작가의 반대편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평은 작품이 스스로 만든 관습에 갇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음 질문을 요구한다.
그래서 엄격한 비평은 때로 가장 깊은 찬사가 된다.
더 이상 질문할 가치가 없는 작품에는 비평도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이 문화가 된다는 것은 다음 사람이 다른 답을 내놓는다는 뜻이다

한글문화의 미래는 금보성 한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금보성의 작업이 의미를 가지려면 언젠가 그것을 넘어서는 작가가 나와야 한다.
그의 작품과 전혀 다른 한글회화가 등장해야 하며, 한글회화라는 이름조차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미술이 한글의 구조에서 발생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때 한글은 특정 작가의 소재에서 벗어나 하나의 창작 기반이 된다.
이것이 ‘소유한 문자’와 ‘생성하는 문화’의 차이다.
소유한 문자는 “이것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한다.
생성하는 문화는 묻는다.
“이것으로 다음에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한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문자로서의 한글은 15세기에 창제되었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한글은 어느 한 시대에 완성될 수 없다.
문화에는 최종본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다시 해석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며, 다른 문화권의 관객을 만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의미를 획득한다.
그렇다면 금보성비엔날레가 궁극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도 한 작가의 성취보다 더 커야 한다.
한글은 21세기의 세계미술에 무엇을 새롭게 제안할 수 있는가.
새로운 추상을 만들 수 있는가.
새로운 공간 경험을 만들 수 있는가.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가.
디지털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문자를 보고 경험하는 방식을 다시 질문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한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시각적 사고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계속 살아 있는 한 한글문화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금보성의 작업 역시 이 질문 앞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가 한글을 얼마나 많이 그렸는가가 아니라, 한글이 미술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얼마나 넓혔는가.
그리고 그가 넓혀놓은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었는가.
그것이 한 작가의 실험이 문화적 사건으로 전환되는 기준이다.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한글의 위대함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한글로 세계미술이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순간 한글은 더 이상 한국이 소유한 문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계의 예술가와 관객이 새로운 감각과 질문을 생성할 수 있는 열린 구조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글은 유산을 넘어 문화가 된다.

최성민 더파워 기자 Sungmin@thepowernews.co.kr
<저작권자 © 더파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식시황
항목 현재가 전일대비
코스피 6,912.95 ▲60.37
코스닥 801.94 ▼38.95
코스피200 1,096.25 ▲15.27
암호화폐시황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105,768,000 ▼43,000
비트코인캐시 373,700 ▲700
이더리움 3,310,000 ▼6,000
이더리움클래식 10,670 ▲30
리플 2,029 ▲15
퀀텀 1,131 ▲2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105,814,000 ▼25,000
이더리움 3,312,000 ▼4,000
이더리움클래식 10,680 ▲40
메탈 310 ▼1
리스크 118 ▼1
리플 2,030 ▲14
에이다 302 ▼1
스팀 57 ▲0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105,780,000 ▼70,000
비트코인캐시 373,000 ▼300
이더리움 3,311,000 ▼6,000
이더리움클래식 10,650 ▼20
리플 2,028 ▲15
퀀텀 1,149 0
이오타 6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