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한승호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고 수도권 부동산과 물가 불안이 이어지면서 한국은행이 새해 첫 통화정책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다시 미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하기로 하고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기준금리는 지난해 7월 이후 5차례 연속 동결됐다.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연 2.50%까지 내리며 완화 기조로 선회했던 금통위는 하반기 들어 연속 인하 대신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미국 정책금리(연 3.50~3.75%)와의 격차는 1.25%포인트로 유지되며, 추가 인하 시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화 가치 하락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핵심 변수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480원을 웃돌며 고공행진을 이어간 뒤 외환당국 개입으로 한때 1,420원대까지 내려갔지만, 새해 들어 다시 1,470원 안팎까지 상승해 1,500원 선을 넘볼 수 있는 수준에 근접했다.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 수출기업의 달러 환전 지연, 일부 기관투자가들의 해외 채권·주식 분산 투자 등이 겹치며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와 소비자물가를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입물가는 전월보다 0.7% 오르며 6개월 연속 상승했고,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전년 동월 대비 2.3% 올라 넉 달째 2%대를 유지했다. 석유류와 수입 쇠고기 등 환율 영향이 큰 품목의 오름세가 두드러지면서 한은 물가안정 목표(2%)를 웃도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물가 관리 차원에서도 추가 완화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 흐름도 동결 배경으로 거론된다. 정부의 연이은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값은 1년 가까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비규제 지역 중심으로 거래량과 기대 심리가 회복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금통위로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을 자극해 자산 가격 버블을 다시 키우고, 가계부채 관리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수출 경기 회복세는 금리 인하 압박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 인공지능 수요 확대에 힘입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고, 이에 기반한 성장률 전망도 지난해보다 개선된 상태다. 한은은 반도체 호조와 점진적인 내수 회복을 전제로 올해 성장률을 잠재성장률에 근접한 수준으로 제시한 바 있어, 당장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서둘러 낮출 유인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향후 통화정책 경로를 둘러싸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내수 부진을 고려하면 하반기 중 최소 한 차례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시각과, 고환율·고물가가 이어질 경우 연내 인하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공존한다. 일부에선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상향 돌파해 안착할 경우,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오히려 추가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금통위는 당분간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한 채 환율과 물가, 부동산·가계부채 지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며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가다듬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