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증시 상승이 소비심리 자극…소매판매 1분기 5.1% 증가
백화점 점당 매출 26.8%↑…외국인 비중 7~8%대로 확대
명동·강남·잠실·부산 핵심 점포 고성장…편의점·패션까지 회복 확산 주목
/연합뉴스[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국 소비시장의 회복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경기와 임금이 좋아져야 내수가 살아나던 기존 구조에 반도체 호황이 만든 소득·자산 효과와 K컬처를 따라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소비가 동시에 더해지고 있다.
백화점과 명품 소비가 가장 먼저 반응한 가운데 편의점과 패션 등으로 회복 범위가 넓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지난해 상반기 1%대에 머물렀지만 3분기부터 3%대로 올라섰고 올해 1분기에는 5.1%까지 확대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소매시장 성장률이 높아지면서 단순 가격 인상을 넘어 실제 소비량 회복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첫 번째 동력은 반도체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21%에서 올해 5월 42%까지 높아졌다. 6월 전체 수출은 전년보다 71% 증가했고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200%에 달했다.
수출 호조는 기업 실적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의 이익 확대가 증시 상승과 성과급, 고용을 거쳐 소비로 이어지는 구조가 강해지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도 같은 흐름을 보인다. 4월 99.2까지 떨어졌던 지수는 증시가 회복되면서 6월 106.6으로 반등했다. 수출과 주식시장의 강세가 가계의 소비심리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경제의 높은 수출 의존도를 감안하면 반도체 업황 상승기와 소비 회복기가 이전보다 강하게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반도체 실적 개선이 성장률과 자산가격을 끌어올리고, 일정 시차를 두고 내수 소비로 전달되는 경로다.
특히 대규모 성과급이 실제 소비시장에 미칠 영향도 작지 않다. SK하이닉스가 2027년 지급할 성과급을 20조원으로 가정할 경우 국내 소매시장 규모의 3.1%에 해당한다는 추정도 나온다. 세금 등을 감안해도 실질 영향은 약 1.8~2.0% 수준으로 분석된다.
소비 회복의 양상은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고가 상품과 럭셔리, 여가 소비가 먼저 반응하는 ‘K자형’ 회복이 뚜렷하다.
5월 백화점 점당 매출은 전년보다 26.8% 증가했다. 구매단가가 9.8% 오른 데다 구매건수도 13.4% 증가했다. 가격 상승과 고객 증가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편의점 점당 매출도 8.1% 늘었다. 반면 대형마트는 7.4% 감소했다. 같은 소비 회복 국면에서도 채널별 온도차는 상당하다.
백화점 안에서도 고가 상품의 회복 속도가 빠르다. 5월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월보다 37.3% 증가했고 여성정장과 남성의류, 아동·스포츠 등 주요 비식품군도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했다.
백화점 기존점 성장률은 최근 20%대로 올라섰다. 코로나19 직후 이연 소비가 폭발했던 2021년 연간 성장률 22%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두 번째 소비 동력인 외국인이 가세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을 처음 넘어섰다. 올해 정부 목표치는 2300만명이다.
외국인 소비가 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내 소매시장 대비 외국인 관광객 카드 사용액 비중은 3%를 넘어섰다. 지난해 4~5% 수준이던 국내 백화점 외국인 매출 비중은 올해 2분기 7~8%대로 높아졌다.
외국인이 몰리는 핵심 점포에서는 변화가 더 두드러진다. 롯데백화점의 1분기 외국인 매출은 전년보다 약 90% 증가했고 본점은 101%, 잠실점은 89%, 부산지역 3개 점포는 96% 늘었다.
2분기에는 전체 외국인 매출 증가율이 93% 수준으로 추정된다. 본점과 잠실점 매출 성장률도 각각 24%, 21%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세계 역시 외국인 효과가 강했다. 2분기 외국인 매출 증가율은 110% 수준으로 추정됐고 본점은 360~460%, 센텀시티는 1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점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2분기 30% 안팎까지 올라갔다. 강남점과 센텀시티도 외국인 비중이 상승하면서 전체 매출 성장에 힘을 보탰다.
현대백화점도 같은 흐름이다. 더현대서울과 무역센터점, 판교점 등에서 외국인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분기 일부 점포의 외국인 매출 증가율은 60~240% 수준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외국인 소비가 중요한 이유는 전체 시장 규모보다 특정 점포의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은 전체 백화점 매출의 약 38%, 신세계 본점과 강남점은 약 37%를 차지한다.
부산도 새로운 소비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세계 센텀시티를 비롯한 부산 주요 점포가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면서 서울 명동·강남·잠실에 집중됐던 외국인 소비가 지역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한국 백화점의 변화는 일본이 먼저 경험한 흐름과 닮았다.
일본에서는 방일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2022~2024년 백화점 매출이 연평균 9% 증가했다. 같은 기간 면세 매출은 연평균 144% 늘었고 영업이익률도 개선됐다.
이세탄미츠코시와 타카시마야 등 주요 백화점 기업은 실적 개선과 함께 주가 재평가를 경험했다. 외국인 고소득층이 백화점을 정품을 믿고 살 수 있는 쇼핑 채널로 인식하면서 주얼리와 핸드백, 액세서리 등 고가 상품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한국은 엔저에 크게 의존했던 일본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K팝과 K뷰티, K푸드, 드라마·영화 등 문화 콘텐츠가 관광객 자체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외국인의 소비 범위도 쇼핑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내 여행 과정에서 화장품과 패션은 물론 음식점, 베이커리, 미용실, 피부과, 호텔, 교통까지 지출이 확산되고 있다.
K컬처가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 외국인을 한국으로 불러들이고, 이들이 국내에서 직접 소비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유통업 실적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 신세계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60% 이상 증가하고 롯데쇼핑도 40%대 증가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백화점 역시 두 자릿수 이익 성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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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다음으로는 편의점이 소비 회복의 온기를 받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내 편의점 시장은 과잉 출점으로 성장성이 둔화됐지만 최근 2년간 점포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점포 수는 2023년 5만5580개에서 2024년 5만4852개, 2025년 5만3266개로 줄었다.
점포 수가 감소하면서 점포당 커버리지 인구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소비 회복과 야간 유동인구 증가, 외국인 관광객 소비가 더해지면서 기존점 매출이 개선될 여지가 커졌다.
올해 주요 편의점의 기존점 성장률은 4~5% 수준이 예상된다. 물가 상승과 트래픽 증가, 외국인 매출 확대에 지난 2년간의 구조조정 효과까지 겹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패션도 백화점과 맞물려 회복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고가 의류 시장은 2023년 이후 재고 증가와 할인판매로 수익성이 장기간 악화됐지만 최근 백화점 트래픽이 살아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한섬은 2분기 매출이 8~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원무역은 OEM 수요 회복과 아웃도어 브랜드 성장, F&F는 MLB와 중국 사업 개선이 기대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도 해외 패션과 수입 화장품 매출 증가가 손익 개선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소비 회복을 전 업종의 동반 호황으로 보기는 이르다. 대형마트는 고객 감소가 이어지고 있고 패션 역시 브랜드별 차별화가 크다. 높은 금리와 해외 소비도 내수 회복을 제한할 수 있다.
오히려 관전 포인트는 소비 회복의 ‘폭’이다. 지금까지 백화점과 고가 소비에 집중됐던 회복세가 편의점과 패션, 외식 등 생활 소비로 얼마나 확산하느냐가 향후 내수 경기의 강도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주식시장에서도 아직 변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올해 증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기술주로 자금이 강하게 쏠리면서 유통·음식료·화장품·의류 등 내수 업종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여전히 낮다.
백화점주는 실적 개선을 반영해 먼저 움직였지만 편의점과 의류까지 같은 흐름이 확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반기 실적에서 소비 회복이 실제 이익 증가로 확인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후발주자 찾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소비 회복의 핵심은 국내에서 돈을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데 있다. 반도체 호황이 국내 가계의 소득과 자산을 높이는 동시에 K컬처가 해외 소비자를 한국으로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유통업의 오래된 한계는 인구 감소와 제한된 내수시장 규모였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새로운 고객층으로 자리 잡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백화점 계산대 앞에 서는 사람이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반도체가 국내 소비 여력을 만들고 K컬처가 해외의 지갑을 끌어오는 구조. 한국 소비시장이 이전과 다른 성장 공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