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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다음 숙제, 돈을 많이 푸는 것보다 잘 흘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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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다음 숙제, 돈을 많이 푸는 것보다 잘 흘리는 것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6-26 08:55

좀비기업 외부효과와 예금금리 임계효과가 던진 과제…여신·수신 통합 관리 필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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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은행의 본질은 자금중개다. 돈이 남는 곳에서 돈이 필요한 곳으로 자금을 옮기고, 그 과정에서 실물경제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 은행권의 과제는 단순한 중개 규모 확대가 아니다. 돈을 어디에 배분할 것인지, 어떤 비용으로 조달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신용위험과 유동성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동시에 중요해졌다.

국내은행이 마주한 첫 번째 과제는 생산적 신용배분이다. 부실기업에 자금이 묶이면 그 비용은 부실기업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같은 업종의 정상기업 대출금리에 위험프리미엄으로 반영될 수 있고, 신용도가 낮지만 생존 가능한 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좁힐 수 있다. 은행이 업종 전체를 위험하다고 보고 일률적으로 금리를 높이면, 부실을 줄이는 대신 회복 가능한 기업의 성장을 막는 역효과가 생긴다.

두 번째 과제는 안정적 예금조달이다. 예금금리는 고객 유치를 위한 숫자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행의 조달비용과 유동성 리스크, 대출공급 여력을 좌우하는 가격이다. 예금 기반이 풍부한 기관과 대출 비중이 높은 기관은 평상시 예금금리 전략이 다르고, 신용시장 스트레스가 커지면 그 관계가 반전되기도 한다. 같은 기준금리 환경에서도 기관별 비즈니스모델에 따라 조달 전략은 달라진다.

토스인사이트의 ‘최근 국내은행 자금중개의 이중 과제: 생산적 신용배분과 안정적 예금조달의 조건’ 보고서는 이 두 문제를 하나의 자금중개 구조로 묶어 봐야 한다고 제시한다. 여신과 수신은 별개의 부서가 다루는 업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행의 핵심 가격결정 체계 안에서 연결돼 있다. 업종별 부실 축적은 대출금리에 영향을 주고, 신용시장 스트레스는 예금금리에 영향을 준다. 그 결과 신용배분 효율성과 조달 안정성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대출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업종 리스크와 개별기업 리스크를 분리하는 일이다. 업종 내 좀비기업 비중이 높다면 은행이 이를 여신 포트폴리오의 선행 리스크 지표로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정상기업 전체에 대한 일률적 금리 가산으로 적용하면 신용배분 왜곡이 커진다. 같은 업종 안에서도 현금흐름이 유지되고 매출 기반이 살아 있으며 이자보상능력 회복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

특히 서비스업에서는 담보 중심 여신평가의 한계가 더 크다. 유형자산이 부족하고 무형자산 의존도가 높은 기업을 기존 담보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성장 가능성이 있어도 자금 접근성이 낮아질 수 있다. 고객 기반, 반복 매출, 매출채권 회수 가능성, 현금흐름의 안정성 같은 지표를 신용평가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생산적 금융이 현실화된다.

조달 측면에서는 예금금리를 단기 수신 확대 수단이 아니라 조달 안정성 관리 도구로 봐야 한다. 예금/부채 비율, 대출/자산 비율, 예금금리 스프레드, 신용스프레드, 고금리 예금 만기구조를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예금 이탈 가능성과 재조달 비용, 시장성 조달 여건이 동시에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과제는 서로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실기업에 대출이 묶이면 은행의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이 약해지고, 조달비용이 높아지면 새 대출을 공급할 여력도 줄어든다. 반대로 예금 기반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조달비용을 관리할 수 있어야, 은행은 단기 수익성 압박에 덜 흔들리며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자금을 배분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여신 포트폴리오와 조달전략의 통합 점검이다. 업종별 좀비기업 익스포저, 저신용 정상기업의 대출 조건, 만기연장 구조, 예금 의존도, 대출 비중, 고금리 예금 만기, 신용스프레드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금중개 리스크 지도로 봐야 한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는 각각 자산과 부채의 가격이지만, 둘 다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을 보여주는 신호다.

정책당국에도 과제가 있다.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려면 대출 총량 확대만 볼 것이 아니라 자금이 어떤 기업으로 이동하는지를 봐야 한다. 동시에 예금금리 경쟁을 과열 여부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기관별 조달구조와 신용시장 스트레스 수준을 함께 살펴야 한다. 자금운용과 자금조달을 따로 관리하면 은행권 리스크의 전이를 놓칠 수 있다.

국내은행의 경쟁력은 앞으로 대출을 많이 내주는 능력만으로 평가되기 어렵다. 부실을 연장하는 자금과 성장을 돕는 자금을 가르는 능력, 예금을 싸게 조달하는 능력과 위기 때 안정적으로 지키는 능력, 이 둘을 함께 관리하는 체계가 중요해진다. 은행의 다음 숙제는 돈을 많이 푸는 것이 아니라,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안정적으로 흐르게 만드는 일이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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