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AP 9개월간 의심정보 46만3000건 공유…7009개 계좌 지급정지
8월부터 통신사·수사기관 정보까지 연계…악성앱·신규 휴대폰 정보 활용
금융위, 전 금융권 대포통장 실태조사…신규 계좌 차단 제도개선도 추진
/연합뉴스
[더파워 이경호 기자]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신고하기 전에 수상한 계좌와 전화번호, 악성앱 설치 여부 등을 금융·통신·수사기관이 함께 확인해 돈이 빠져나가는 길목부터 막는 대응체계가 본격 가동된다.
은행권의 보이스피싱 의심정보를 공유해온 인공지능(AI) 플랫폼은 지난 9개월 동안 7009개 계좌를 지급정지해 663억6000만원의 피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는 20일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경찰청과 국세청,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주요 시중은행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은행 본점에서 '제2차 보이스피싱 근절 협의회'를 열고 보이스피싱 정보공유·분석 AI 플랫폼 'ASAP' 가동 현황과 추가 대응과제를 논의했다.
ASAP은 금융회사들이 각자 보유하고 있던 보이스피싱 의심정보를 금융권 전체가 공유해 의심 거래를 조기에 포착하는 플랫폼이다. 지난해 10월 은행권 정보를 기반으로 출범한 뒤 올해 7월 말까지 9개월 동안 46만3000건의 의심정보가 공유됐다.
이를 토대로 금융회사들은 7009개 계좌를 지급정지했고 663억6000만원의 자금 편취를 피해 발생 전에 차단했다.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사실을 알아차리고 신고한 뒤 계좌를 막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의심정보가 포착되는 순간 자금 이동부터 제어하는 방식으로 대응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셈이다.
이달부터는 은행 정보에 통신·수사 정보까지 더해졌다. 지난 4일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시행되면서 금융회사와 통신사, 수사기관이 각자 확보한 보이스피싱 의심정보를 ASAP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통신사들은 법 시행 직후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화번호 등 100여건의 정보를 ASAP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금융회사들은 이를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에 연계해 의심 거래 판별에 활용하고 있다.
은행이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계좌 거래내역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달라진 부분이다. 수취 계좌가 이미 다른 금융회사에서 의심계좌로 등록됐는지, 고객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악성앱이 설치됐는지, 최근 본인 명의의 새 휴대전화가 개통됐는지 등을 한꺼번에 대조할 수 있다.
실제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이 퇴직을 앞둔 피해자에게 원격제어 앱과 신규 휴대전화 개통을 요구한 뒤 돈을 '안전계좌'로 옮기라고 속인 사례에서도 이 같은 방식이 활용됐다.
피해자가 송금을 시도한 계좌는 이미 다른 은행이 ASAP에 등록한 의심계좌였고, 경찰이 공유한 악성앱 설치 정보와 통신사의 신규 휴대전화 개통 정보까지 동시에 포착됐다. 거래은행은 이 세 가지 정보가 겹치자 이체를 즉시 중단하고 고객에게 연락해 피해를 막았다. 해당 사례는 금융회사의 실제 탐지사례를 토대로 재구성됐다.
은행 내부에서도 보이스피싱 대응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리은행은 보이스피싱을 탐지하는 FDS 부서와 자금세탁방지(AML) 부서가 따로 움직이던 체계를 하나로 연결했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투자사기 등 신종 피싱과 자금세탁이 한 범죄조직 안에서 뒤섞이는 경우가 늘고 있어 개별 부서의 정보만으로는 범죄 흐름을 잡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우리은행은 두 시스템의 데이터를 연결해 의심 거래 탐지 정확도를 높였다.
특히 AML 시스템에서 포착한 다른 은행의 의심계좌 정보도 금융권 전체가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3월 말부터 7월까지 관련 정보 576건을 ASAP에 등록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AML 시스템에서 포착한 타행 의심계좌 정보를 ASAP에 공유할 수 있게 됐다"며 "우리은행의 강화된 탐지정보가 금융권 전체 방어기제로 확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사도 은행과의 공조를 확대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악성앱 제어 서버 탐지시스템을 활용해 고객이 대출까지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거액을 송금하려던 피해를 사전에 막은 사례를 소개했다.
LG유플러스는 경찰 등과 함께 피해 우려 고객을 직접 방문해 범죄 패턴을 분석하고 있으며, 고객 피해방지 분석시스템과 24시간 악성 URL·앱 모니터링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LG유플러스는 법 개정 전인 지난해 8월 이미 보이스피싱 예방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범죄 수법 공유와 피해 예방 지원체계 구축을 추진해왔다.
양측은 "개정법 시행으로 확실한 협업 근거가 마련된 만큼 보이스피싱 범죄로부터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금융·통신 분야 협력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다음 타깃은 '대포통장'이다.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마약과 불법도박 등 각종 범죄에서 돈을 받아 빼돌리는 통로로 악용되는 만큼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실태를 파악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금융권 전체를 대상으로 대포통장 현황을 조사한 뒤 확인된 계좌에 대해서는 법무부·국세청·경찰청 등과 협업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새 대포계좌가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별도 제도개선도 병행한다.
가상자산을 이용해 보이스피싱 자금을 빼돌리는 통로도 막는다. 관련 의심거래를 탐지하고 계좌를 정지해 자금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은 이미 완료됐으며 오는 10월1일부터 시행된다.
보이스피싱 수사 과정에서 범죄 규명에 협조한 사법협조자의 형벌을 감면하는 법안도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금융회사 등의 무과실책임 법제화를 담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ASAP의 가장 큰 의의는 기술적 플랫폼 자체보다 그간 서로 단절돼 있던 금융·수사·통신 분야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방식을 통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실질적으로 협업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점검과 제도개선을 병행 추진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부처·기관·업권 간 협업의 깊이를 더해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금융범죄 피해를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