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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조금 받고도 밀가루 담합…제분사 7곳 6710억원 과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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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조금 받고도 밀가루 담합…제분사 7곳 6710억원 과징금

한승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5-20 12:52

공정위, 담합 사건 역대 최대 과징금 부과…정부 보조금 기간에도 가격·물량 합의 확인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설탕, 밀가루 판매대 모습/연합뉴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설탕, 밀가루 판매대 모습/연합뉴스
[더파워 한승호 기자] 라면과 국수, 빵, 과자 등에 쓰이는 밀가루 공급가격을 장기간 짜고 조정한 제분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을 부과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과징금은 담합 사건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과거 2006년에도 밀가루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다시 담합을 벌였고,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간에도 담합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중대하게 봤다.

공정위 조사 결과 7개 제분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간 제면·제과·제빵업체 등 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밀가루 공급가격과 공급 물량을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합은 대형 수요처인 농심, 팔도, 풀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가격·물량 합의 19차례와 중소형 수요처 및 대리점 등 전체 거래처 대상 가격 합의 5차례 등 총 2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들 업체는 국내 B2B 밀가루 제조·판매 시장에서 2024년 매출액 기준 87.7%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과점 사업자들이다. 이 가운데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등 상위 3개사의 점유율만 62.0%에 달했다.

2022. 8. 8. 대선제분 김ㅇㅇ–씨제이제일제당 박▲▲ 카톡대화
2022. 8. 8. 대선제분 김ㅇㅇ–씨제이제일제당 박▲▲ 카톡대화


담합의 출발점은 2019년 제분사 간 경쟁 격화였다. 대한제분이 국내 최대 밀가루 수요처인 농심에 낮은 견적을 내 최다 공급 물량을 확보하자, 경쟁사들이 중소형 대리점 등을 상대로 공격적인 할인 영업에 나섰다. 이후 상위 제분사 임원들이 만나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고 가격과 물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담합이 시작됐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초기 담합은 농심과 팔도 등 대형 수요처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후 2020년 1월에는 하위 제분사까지 참여해 혼합분과 중력 2급분 가격 인상 합의가 이뤄졌고, 2021년 4월부터는 7개 제분사 모두가 전 거래처를 대상으로 밀가루 전 제품 가격을 합의하는 구조로 확대됐다.

합의 방식도 조직적이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제분사들은 담합 기간 중 대표자급 및 실무자급 회합을 총 55차례 가졌다. 영업본부장 이상 임원급 회합에서 큰 방향을 정하고, 영업팀장 등 실무자 회합에서 구체적인 가격 인상 폭과 시기, 거래처별 대응 방식을 조율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 원맥 가격 변동도 담합에 활용됐다. 국내 밀가루 생산에 필요한 원맥은 사실상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제 원맥 가격과 환율이 밀가루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분사들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원맥 가격이 오를 때는 원가 상승분을 빠르게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맞췄다.

반대로 2023년 이후 원맥 가격이 안정되거나 하락하자 가격 인하는 최대한 늦추거나 최소 수준으로 제한했다. 농심이 원맥 가격 안정을 이유로 1kg당 80원 인하를 요청했을 때 제분사들이 인하 폭을 20원으로 맞춘 사례도 담합 내용에 포함됐다. 2024년에는 농심의 가격 인하 요청에도 환율 상승을 이유로 오히려 제분사별 공급가격을 1kg당 15~20원 수준 올리기로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담합 기간 밀가루 가격은 크게 뛰었다. 공정위는 2022년 9월경 밀가루 판매가격이 담합 시작 시점인 2019년 12월보다 제분사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원가 상승기에는 가격이 빠르게 올랐지만, 원가 하락기에는 가격 인하가 제한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2020. 1. 9.및1. 10.사조동아원내부회의자료(발췌)
2020. 1. 9.및1. 10.사조동아원내부회의자료(발췌)


정부 보조금을 받은 기간에도 담합은 이어졌다. 정부는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물가 안정 차원에서 밀가루 가격안정 지원사업을 운영했고, 제분사들은 총 471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공정위는 제분사들이 보조금 수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령 시점 이전에 가격 인상 합의를 실행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고 밝혔다.

제재 금액은 업체별로 차등 부과됐다. 과징금은 사조동아원이 1830억97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대한제분 1792억7300만원, CJ제일제당 1317억100만원, 삼양사 947억8700만원, 대선제분 384억4800만원, 한탑 242억9100만원, 삼화제분 194억4800만원 순이다.

공정위는 과징금 외에도 강도 높은 시정명령을 내렸다. 7개 제분사에는 향후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함께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 법 위반사실 통지명령, 임직원 교육 실시 및 보고명령, 담합 여부 자체조사 및 보고명령, 담합 가담자 징계규정 신설 및 보고명령 등이 부과됐다.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은 제분사별로 담합 이전의 경쟁질서를 회복하는 수준으로 밀가루 가격을 다시 정하고, 그 근거와 결과를 공정위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치다. 또 이들 업체는 앞으로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공정위에 서면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지난 1월 검찰 고발요청에 따라 7개 제분사와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14명에 대해 이미 고발 조치를 완료했다.

밀가루는 라면, 국수, 빵, 과자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품의 핵심 원재료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국민 생활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90%에 가까운 과점 사업자들이 장기간 은밀하게 벌인 담합을 적발해 제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가격재결정 명령 등 적극적인 시정조치를 통해 담합으로 왜곡된 시장가격이 경쟁 당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고, 부당이득이 환수되며 가계 부담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밀가루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가격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하겠다”고 전했다.

한승호 더파워 기자 hansh1975@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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