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치지직 전략적 업무협약 체결식에서 박수용 크래프톤 e스포츠 실장(사진 왼쪽)과 신슬기 네이버 게임 콘텐츠 제휴 리더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더파워 이경호 기자] 국내 게임업계가 다시 변곡점 앞에 섰다. 한때 고성장 산업으로 주목받았던 게임주는 최근 신작 흥행 공백과 국내 시장 성장 둔화, 글로벌 경쟁 심화가 겹치며 투자심리가 약해졌다. 그러나 업계 내부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대표를 바꾸고, 조직을 손보고, 신작 전략을 다시 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침체를 단순히 버티는 단계가 아니라 다음 성장 엔진을 찾기 위한 재정비 구간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과거처럼 한두 개 흥행작에 의존하는 방식만으로는 장기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주요 게임사들은 글로벌 시장 확대와 IP 생태계 강화, 플랫폼 협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15일 IBK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국내 게임엔터테인먼트 업종은 최근 1개월 수익률이 -7.3%, 1년 수익률이 -22.4%로 부진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게임업종의 소외가 뚜렷하다. 주요 게임사 주가도 엇갈렸다. 크래프톤은 1년 기준 -38.0%, 카카오게임즈는 -47.7%, 시프트업은 -39.0%, 데브시스터즈는 -67.1%를 기록했다.
주가 부진의 배경에는 성장 기대 약화가 있다. 국내 게임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모바일 게임 중심의 과금 모델은 피로감이 커졌고, 이용자 눈높이는 글로벌 대작 수준으로 높아졌다. 중국과 북미, 일본 게임사들과의 경쟁도 거세졌다. 단순 출시만으로는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장이 된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경영진 교체는 단순 인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네오위즈, 카카오게임즈, 넥슨 등 주요 게임사들이 잇따라 경영진 변화를 모색하는 흐름은 조직 혁신과 신작 경쟁력 강화, 글로벌 전략 재정비를 동시에 겨냥한 행보로 해석된다. 기존 성공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결정 구조와 개발 방향을 새로 짜겠다는 신호다.
게임업계의 다음 승부처는 결국 신작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단일 플랫폼, 단일 국가 흥행만으로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어렵다. 콘솔, PC, 모바일을 넘나드는 멀티플랫폼 전략과 북미·유럽·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가 더 중요해졌다. 국내 이용자 중심의 매출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유저를 확보해야 실적 안정성과 밸류에이션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다.
IP 확장도 핵심 과제다. 게임 하나를 출시하고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e스포츠·영상·굿즈·커뮤니티·라이브 서비스로 이어지는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용자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을 넘어 보고, 공유하고, 소비하는 영역까지 넓히는 전략이다.
이런 흐름에서 크래프톤과 네이버의 협업은 상징적이다. 양사는 e스포츠 콘텐츠 생태계 확장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네이버의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이 가진 안정적 송출 기술과 커뮤니티형 시청 문화를 기반으로,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대회 중계와 리그 파트너십, 공동 프로모션과 브랜딩 협업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게임산업에서 e스포츠는 더 이상 부가 콘텐츠가 아니다. 이용자 충성도를 높이고, 게임 수명을 늘리며, 신규 유저 유입을 만드는 핵심 채널이 됐다. 특히 배틀그라운드처럼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IP는 e스포츠와 결합할 때 브랜드 가치가 더 오래 유지된다. 크래프톤 입장에서는 게임 IP의 라이프사이클을 늘리는 전략이고, 네이버 입장에서는 치지직의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카드다.
국내 게임사들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신작 흥행은 예측하기 어렵고, 글로벌 마케팅 비용은 커지고 있다. 기존 인기작의 매출 하향 안정화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위기감에서 출발한 만큼 속도가 빠르다. 대표 교체와 조직 개편, 플랫폼 협업, e스포츠 확장까지 동시에 진행되는 이유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실적보다 변화의 방향을 봐야 하는 시점이다. 어떤 기업이 신작 파이프라인을 실제 매출로 연결할 수 있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반복 가능한 흥행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 기존 IP를 e스포츠와 콘텐츠 생태계로 확장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K게임은 한동안 성장 둔화의 그림자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업계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대표를 바꾸고, 전략을 고치고, 플랫폼과 손잡는 변화가 시작됐다. 침체를 끝내는 답은 결국 새로운 흥행작과 글로벌 유저, 그리고 오래 살아남는 IP 생태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