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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점포 하나가 창업 29개를 좌우했다…지역금융의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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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점포 하나가 창업 29개를 좌우했다…지역금융의 경고음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6-16 08:57

산업연구원, 161개 시군구 9년 패널 분석…“은행 점포는 지역 신용·정보 인프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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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모바일뱅킹과 인터넷뱅킹이 일상이 되면서 은행 점포는 점차 ‘줄어도 되는 비용’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역경제 관점에서 은행 점포는 단순한 입출금 창구가 아니라 창업과 기업 생존을 떠받치는 신용 인프라라는 분석이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지역경제에서 금융의 생산적 역할: 은행 점포 변화와 기업 생멸 동학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은행 점포가 줄어드는 지역일수록 신생기업 진입이 위축되고 기존 기업의 소멸이 늘어나는 흐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국내 161개 시군구의 2016~2024년 균형패널 자료를 활용해 은행 점포 변화와 기업 생멸의 관계를 분석했다.

분석의 핵심은 숫자 하나에 압축된다. 한 시군구에서 은행 점포가 1개 늘어날 경우 그해 신생기업은 약 29~31개 증가하고, 소멸기업은 약 33개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대로 말하면 점포 1개가 사라질 때 지역에서는 새로 생길 수 있었던 기업 수십 곳의 진입 가능성이 낮아지고, 기존 기업의 폐업 위험도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은행 점포망 축소는 이미 장기 흐름으로 굳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은행 점포 수는 2012년 하반기 7702개로 정점을 찍은 뒤 2025년 하반기 5513개까지 줄었다. 10여 년 사이 약 28% 감소한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비대면 채널 확대와 비용 효율화, 중복 점포 통폐합이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지만, 지역 입장에서는 신용 접근성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충격은 지역별로 균등하지 않았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은행 점포 감소율은 대구광역시가 -28.2%로 가장 컸고, 서울특별시 -27.3%, 대전광역시 -24.5%, 부산광역시 -21.7% 순이었다. 감소율 상위 4곳 중 3곳이 비수도권 광역시였다. 산업연구원은 비수도권 광역시의 점포 감소 속도가 도 산하 시·군보다 빠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은행 점포가 줄어드는 문제는 단순히 가까운 지점이 없어지는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창업 초기 기업은 재무제표나 담보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역 점포는 이들의 거래 이력, 사업성, 상권 흐름, 지역 네트워크 같은 정성적 정보를 축적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이른바 ‘거리 기반 신용평가’가 작동하는 현장이다.

비대면 금융은 표준화된 거래와 단순 금융서비스에는 효율적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 금융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특히 창업 초기 기업이나 지역 소상공인은 온라인 심사만으로 사업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은행 점포가 지역에서 사라질수록 금융기관과 기업 사이의 접촉면은 줄어들고, 이는 신규 자금 공급의 문턱을 높일 수 있다.

보고서의 권역별 분석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수도권·충청권·호남권·동남권·대경권과 전북권·강원권·제주권 등 8개 권역을 비교한 결과, 6개 권역에서 은행 점포 수와 신생기업 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점포가 줄어든 지역에서는 신생기업도 줄었고, 점포가 늘어난 지역에서는 신생기업도 함께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났다.

전북권은 눈에 띄는 예외이자 동시에 중요한 사례다. 다른 권역에서 점포가 대체로 줄어드는 동안 전북권은 2016년 154개에서 2024년 170개로 점포 수가 늘어난 유일한 권역이었다. 같은 기간 신생기업 수도 함께 증가했다. 점포와 신생기업의 동행 관계가 감소 방향뿐 아니라 증가 방향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반대로 소멸기업과의 관계는 정반대였다. 수도권, 동남권, 대경권에서는 점포가 빠르게 줄어드는 시기에 소멸기업이 늘어나는 흐름이 뚜렷했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은행 점포가 새 기업의 진입뿐 아니라 기존 기업의 존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기업 입장에서 은행 점포는 위기 때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매출이 일시적으로 줄거나 운전자금이 부족한 기업은 지역 금융기관과의 관계를 통해 대출 연장, 보증 연계, 상환 조정 같은 지원을 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점포가 사라지고 의사결정이 중앙화되면 지역 사정을 반영한 세밀한 금융 판단은 어려워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은행 점포 축소는 창업 정책과도 연결된다. 정부와 지자체가 창업 지원금을 늘리고 창업 공간을 제공하더라도, 실제 사업 운영에 필요한 금융 접근성이 약해지면 창업 생태계의 지속성은 떨어질 수 있다. 산업연구원이 은행 점포를 ‘지역경제의 생산적 인프라’로 규정한 이유다.

금융 소외 지역 문제도 남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점포 5개 이하의 금융 소외 시군구는 72개에 이르며, 이 가운데 96%가 비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에서는 점포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 단순한 지점 폐쇄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금융 접점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책 대응도 단순히 점포 폐쇄를 막는 방식에 그쳐서는 어렵다. 비대면 금융 전환이라는 흐름 자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점포 폐쇄가 집중되는 지역을 조기에 파악하고, 금융 접근성이 급격히 낮아지는 권역에 보완 수단을 배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산업연구원은 지역밀착 신용평가 인력 파견, 지방은행과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협업 강화, 모빌리티 점포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찾아가는 지점이나 이동형 금융서비스를 통해 물리적 점포의 공백을 일부 메우고, 지역 기업에 대한 정성적 정보 수집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는 취지다.

은행권에도 숙제가 남는다. 디지털 전환이 비용 절감과 고객 편의성 제고를 위한 핵심 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역 기업 금융까지 획일적으로 비대면·중앙집중형 심사에 의존할 경우, 신용이 필요한 초기 기업이나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이 제도권 금융에서 멀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 점포는 사라져도 되는 낡은 인프라가 아니라, 지역의 창업과 기업 생존을 연결하는 금융 접점이라며, 비대면 금융 시대에도 지역 현장을 아는 금융 채널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지역경제의 활력을 말할 때 산업단지, 교통망, 인력 양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돈이 필요한 기업에 적시에 자금이 닿을 수 있는 금융망도 균형발전의 핵심 인프라다. 은행 점포 축소가 계속되는 지금, 지역금융의 빈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다음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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