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별 AI 노출 1위 변호사…법률사무원·변리사·회계사도 상위권
사업체 AI 도입률 28.6%…정보통신 62.9%·운수 11.4%
관리·사무직 생성형 AI 활용 78.8%…생산·제조직은 자동화 50.3%
직업훈련 중복참여 취업확률 8.03%p↑…직종변경은 9.90%p 높아
위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더파워 이우영 기자] 과거 자동화가 공장과 생산라인의 반복 노동을 먼저 바꿨다면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다른 방향에서 노동시장에 파고들고 있다. 변호사와 회계사, 데이터 분석가, 기자처럼 문서와 정보, 판단을 다루는 직업이 AI 기술과 높은 연관성을 보인 반면 신체활동과 현장 작업의 비중이 큰 직업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산업 현장의 도입 속도 역시 크게 갈렸다. 정보통신업에서는 사업체 10곳 중 6곳 이상이 AI를 도입했지만 운수업에서는 10곳 중 1곳 수준에 그쳤다. AI 전환 속도가 직업과 산업마다 달라지면서 필요한 직업훈련 역시 하나의 기술을 한 번 배우는 방식보다 여러 숙련을 결합하거나 새로운 직종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5년 한국직업정보 재직자조사의 업무수행능력과 AI 응용기술 간 연관성을 토대로 국내 415개 직업의 AI 노출도를 산출한 결과 변호사가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법률 관련 사무원과 변리사, 생명과학 시험원, 회계사가 뒤를 이었다.
직업 관련 상담사는 6위, 산업안전·산업위험 관리 기술자는 7위, 해외 영업원은 8위였다. 고위 공무원 및 정당·특수단체 임원이 9위, 세무사가 10위였고 기자 및 언론 관련 전문가는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데이터 분석가는 14위, 회계 사무원 16위, 증권 사무원 17위, 상품기획 전문가는 18위였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 상당수가 글을 읽고 해석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리적 판단을 내리는 전문·사무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과거 산업용 로봇을 중심으로 한 자동화가 생산과 현장직에 집중됐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반대로 AI 노출도가 낮은 직업에는 도금·금속분무기 조작원과 미장공, 떡 제조원, 정육가공원·도축원, 일차전지·이차전지 제조기계 조작원, 단조원, 방수공 등이 포함됐다. 건설·생산현장에서 직접 손과 신체를 사용하거나 기계를 조작해야 하는 직업이 주로 하위권에 자리했다.
다만 AI 노출도가 높다는 것을 해당 직업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번 지표는 읽기·글쓰기·수리력·추리력 등 직업에 필요한 능력과 AI 응용기술의 관련성을 측정한 것으로 직업의 소멸 가능성을 직접 추정한 지표가 아니다.
실제로 같은 직업을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느냐에 따라서도 AI 노출 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 능력 중심의 노출도와 생성형 AI가 실제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을 중심으로 측정한 지표 사이에 일부 직업의 순위 차이가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진은 AI 노출도를 노동 대체 가능성과 동일시하기보다 향후 변화가 클 수 있는 직무를 살펴보는 지표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 현장의 AI 확산도 아직 전 산업으로 번진 단계는 아니었다. 전국 21개 산업 2297개 사업체를 조사한 결과 AI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는 사업체는 656곳으로 전체의 28.6%였다. 자동화 시스템을 제외하고 예측형 AI와 생성형 AI만 보면 도입률은 23.7%였다.
정보통신업의 AI 도입률은 62.9%로 조사 대상 산업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정밀기기가 41.3%, 식료품 39.3%, 전기전자 39.2%, 교육 37.9%, 도소매 37.7%, 연구개발업 32.9%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건설업은 16.4%, 사업지원서비스는 16.3%, 비금속광물은 15.5%, 운수업은 11.4%에 머물렀다. 데이터가 많이 축적돼 있고 디지털 업무 비중이 높은 산업과 현장·물리 작업 비중이 큰 산업 사이에서 AI 도입 속도가 크게 갈린 것이다.
AI를 도입한 기업 가운데서는 생성형 AI의 확산 속도가 가장 빨랐다. AI 도입 사업체 656곳 가운데 75.6%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자동화 시스템 활용은 27.6%, 예측형 AI는 13.3%였다.
산업별로는 제조업에서 생성형 AI 활용 비율이 67.5%, 자동화 시스템은 36.2%, 예측형 AI는 15.5%였다. 건설·에너지에서는 생성형 AI가 88.9%, 서비스업은 82.6%에 달했다.
제조업에서는 생산라인 자동화와 품질 개선, 설비 운영 효율화 등 공정 혁신을 중심으로 AI가 활용됐다. 서비스업에서는 고객 서비스와 데이터 분석, 콘텐츠 제작, 경영지원 등 사무·지식 업무의 혁신에 생성형 AI와 예측형 AI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회사 안에서도 직무에 따라 AI의 형태가 달랐다. 생산·제조직의 자동화 시스템 도입률은 50.3%였지만 생성형 AI는 13.9%였다. 관리·사무직에서는 반대로 생성형 AI 활용률이 78.8%에 달했다.
연구개발직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61.9%, 영업·마케팅직은 47.2%였다. 생산라인에서는 로봇과 자동화가, 사무실과 연구소에서는 생성형 AI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AI를 당장의 대규모 인력감축 수단보다는 반복 업무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AI를 도입한 기업일수록 향후 매출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과 달리 고용 증가 전망이 같은 폭으로 높아지지는 않는 ‘성장-고용 디커플링’ 현상도 나타났다.
산업별 채용 전망도 엇갈렸다. 기계장비와 연구개발, 정밀기기, 정보통신업에서는 AI 관련 인력수요와 전체 신규 채용수요가 모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사업지원서비스와 보건·사회,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AI 인력수요와 신규 채용수요가 모두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AI 도입이 모든 산업의 일자리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성장성, 디지털화 수준, 기존 직무구조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AI 정책보다 제조업은 공정혁신, 서비스업은 업무혁신 등 각 산업의 활용 구조에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직무가 빠르게 달라지면서 직업훈련 방식에도 변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5년도 재정지원일자리사업 성과평가자료를 이용해 구직자훈련 참여자 45만4395명을 분석한 결과 하나의 훈련만 이수한 단일참여자는 44만2723명으로 97.4%, 2개 이상의 훈련에 참여한 중복참여자는 1만1672명으로 2.6%였다.
중복참여자의 훈련 강도는 훨씬 높았다. 단일참여자의 총 훈련기간은 평균 91.5일, 훈련시간은 279.6시간이었던 반면 중복참여자는 각각 172.9일과 612.8시간이었다. 중복참여자는 긴 과정 하나를 듣기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여러 과정을 연속하거나 병행하는 방식으로 숙련을 쌓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 노동시장 성과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기본 분석에서 직업훈련 중복참여자의 훈련 종료 후 6개월 이내 취업확률은 단일참여자보다 8.03%포인트 높았다. 임금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아 여러 훈련을 받는 것이 단기적인 임금 손실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훈련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랐다. 첫 훈련을 끝낸 뒤 다음 훈련을 받는 순차참여는 취업확률이 단일참여보다 8.32%포인트 높았고 두 훈련의 기간이 일부 겹치는 중첩참여는 7.50%포인트 높았다.
취업 가능성에서는 두 방식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지만 임금에서는 중첩참여 집단이 단일참여보다 유의한 프리미엄을 보였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기술을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숙련 간 보완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같은 직종의 훈련을 반복할지 새로운 직종으로 옮길지에 따라서도 취업효과는 크게 갈렸다. 기존과 다른 직종을 배우는 ‘직종변경’ 집단은 취업확률이 단일참여자보다 9.90%포인트 높아 같은 직종을 반복한 집단의 5.97%포인트보다 증가폭이 컸다.
직종변경과 직종반복 모두 임금에서는 유의한 하락이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새로운 직종의 훈련을 추가하는 것이 구직 가능한 직무의 범위를 넓혀 노동시장 재진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직업훈련 중복참여 자체가 취업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애초에 더 적극적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을 고려한 분석에서도 방향은 유지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참여자의 연령과 학력, 지역, 훈련직종 등 관측 가능한 특성을 통제한 뒤에도 중복훈련이 취업확률을 유의하게 높이고 임금에는 유의한 손실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분석 방법에 따라 취업확률 증가효과는 7.47~8.03%포인트로 나타났다.
이는 AI 시대의 직업훈련이 특정 프로그램 하나를 이수한 뒤 끝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존 직무에 AI 활용 능력을 덧붙이거나 서로 다른 기술을 결합하고, 필요할 경우 새로운 직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여러 훈련을 패키지 형태로 설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AI 전환은 모든 직업을 동시에 같은 속도로 바꾸지 않는다. 변호사와 회계사처럼 전문성이 높은 직업에서도 AI와 맞닿는 업무는 빠르게 늘고 있는 반면 현장의 물리적 업무는 상대적으로 변화 속도가 느리다. 기업도 생산직에는 자동화 설비를, 사무직에는 생성형 AI를 서로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에 노출됐느냐’만이 아니라 해당 직업에서 사람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 되고 그 역할을 위해 어떤 숙련을 새로 쌓아야 하느냐다. AI 전환이 빨라질수록 직업교육과 훈련 역시 한 번 배운 기술을 오래 사용하는 구조에서 여러 기술을 계속 조합하고 전환하는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