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파워 최성민 기자] 나주의 문화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금보성비엔날레가 있다.
40년간 한글 회화를 개척해 온 금보성 작가는 나주시 산포면 송림아트센터에서 개인 비엔날레를 열었다. 장장 5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이 전시의 중심은 한글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글은 읽고 뜻을 전달하는 문자에 머물지 않는다. 자음과 획은 해체되고 다시 결합하면서 선과 색, 면과 공간으로 확장된다. 익숙한 문자가 낯선 현대미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전시가 열리는 송림아트센터 역시 특별하다. 대형 미술관이나 새롭게 건축한 문화시설이 아니라 농촌의 유휴공간이었던 농협창고를 전시장으로 바꾼 곳이다. 이 평범했던 공간에 작품이 들어서면서 송림마을은 전혀 다른 장소가 되었다.
금보성비엔날레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문화의 중심은 누가 결정하는가.
대도시인가, 거대한 미술관인가, 막대한 예산인가. 금보성비엔날레는 다른 답을 보여준다. 문화의 중심은 규모가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이 시작되고, 어떤 새로운 질문이 만들어지는가에 따라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5개월이라는 시간
국내의 주요 아트페어와 호텔아트페어, 화랑미술제, 프리즈 서울 등은 짧은 기간에 미술시장과 관람객을 집중시키는 행사다. 반면 금보성비엔날레는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하나의 작품세계에 내어준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의 속도가 아니라 한 작가가 40년 동안 구축한 조형언어를 천천히 들여다보게 한다. 한 번 보고 지나가는 행사가 아니라 다시 찾아와 작품의 변화와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장기적인 문화의 시간을 만든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전시가 서울이 아닌 나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람객이 이미 모여 있는 곳에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사람을 움직여 나주까지 오게 한다. 국내외 미술행사의 관람객 규모와 직접 비교하려면 객관적인 집계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기존 지역 전시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27미터의 한글
송림아트센터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길이 27미터, 높이 5.5미터의 대형 한글 작품이다.
이 작품 앞에서는 한글을 ‘읽는다’는 привыч적인 태도가 무너진다. 글자를 해독하기 전에 거대한 색과 선, 면의 구조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한글이 문장에서 빠져나와 건축적인 규모의 시각언어가 되는 순간이다.
관람객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의 크기만이 아니다.
“이런 한글은 처음 본다.”
바로 그 낯섦이 작품의 힘이다. 한국인에게 너무 익숙한 한글을 오히려 낯설게 만들고,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처음부터 하나의 추상회화이자 시각언어로 다가가게 한다.
그 때문에 금보성비엔날레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를 넘어 ‘평생 한 번은 직접 경험해 볼 만한 전시’라는 목표를 갖게 된다.
△나주에서만 완성되는 작품
세계적인 미술관의 소장품과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형 기획전은 여러 도시와 기관을 통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금보성비엔날레가 주목하는 것은 그와 다른 가치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왜 나주에 가야 하는가.’
27미터의 한글 작품은 송림아트센터의 공간과 결합되어 있고, 송림아트센터는 다시 송림마을이라는 농촌의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작품과 건물, 마을을 분리하기 어려운 하나의 경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금보성비엔날레가 가진 장소성이다.
지역문화의 경쟁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콘텐츠를 가져오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력한 경쟁력은 그 지역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독자적인 콘텐츠를 갖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세계의 명작을 나주로 가져오는 것과 세계인이 한글 작품을 보기 위해 나주를 찾아오는 것은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방향이다.
금보성비엔날레는 후자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100만 문화의병, 또 하나의 전시장
금보성 작가가 구축한 유튜브 100만 문화의병 플랫폼은 송림아트센터 밖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전시장이다.
오늘날 관람객은 입장권을 들고 전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촬영된 작품과 영상은 유튜브와 SNS를 통해 즉시 다른 도시와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신문과 방송이 정보를 전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27미터 한글 작품 앞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에는 작품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송림아트센터라는 공간이 담기고, 송림마을이 기록되며, 게시물에는 ‘나주’라는 지명이 함께 따라간다.
따라서 금보성비엔날레의 문화적 효과는 현장 관람객 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현장 방문, SNS 조회, 영상 공유, 해외 노출이 서로 연결되면서 전시의 범위가 물리적인 공간 밖으로 계속 확장되기 때문이다.
△작은 송림마을이 던지는 큰 질문
지역을 세계화하는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는 문화다.
나주의 인구가 얼마인지, 송림아트센터의 건물이 얼마나 큰지는 문화적 영향력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다른 지역에는 없는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림마을의 작은 농협창고에서 시작된 한글 실험은 기존 미술계에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중요한 전시는 대도시에서 열려야 하는가. 왜 세계적인 문화는 거대한 미술관에서만 탄생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지역은 언제나 중앙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금보성비엔날레는 이 관계를 뒤집으려 한다.
지역이 중앙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이 지역을 찾아오고, 지역이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지역을 발견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문화가 가진 힘이다. 이제 나주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금보성비엔날레의 의미는 한 작가의 성공적인 전시로 끝나서는 안 된다.
5개월 동안 축적되는 관람객의 이동, 한글 콘텐츠, 영상과 사진, 국내외 방문 기록은 앞으로 나주가 활용할 수 있는 문화자산이 될 수 있다. 이를 기록하고 분석해 문화관광, 지역경제, 청년문화, 국제교류와 연결한다면 송림마을에서 시작된 실험은 나주의 장기적인 문화브랜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나주는 이미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나주로 불러들였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보기 위해 나주를 찾아오게 만들 것인가이다.
금보성비엔날레는 그 답 가운데 하나로 ‘한글’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인 작품을 지역으로 가져오는 것도 문화정책이다. 그러나 세계인이 보기 위해 지역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고유한 작품과 콘텐츠를 갖는 것은 더욱 강력한 문화자산이 될 수 있다.
5개월의 시간, 27미터의 한글, 농협창고에서 다시 태어난 송림아트센터, 그리고 세계로 연결되는 디지털 플랫폼.
이 네 가지가 지금 나주의 작은 송림마을에서 만나고 있다. 지역은 문화가 탄생하는 순간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나주가 세계의 미술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이제는 세계가 나주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 금보성비엔날레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