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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섬유 수요 폭증하는데 프리미엄은 해외 의존…‘광망 강국’의 역설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8-18 15:40

AI 케이블 수요 2025년 77% 증가…데이터센터용 비중 2027년 30% 전망
한국 광섬유 기반 회선 90.5%로 세계 2위지만 프리폼 생산 사실상 1개사
중국 생산능력 세계 67%…한국 수출 2700만달러로 15위·고부가 양산도 미흡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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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면서 한동안 통신망의 범용 소재로 여겨졌던 광섬유가 AI 인프라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광통신망을 갖췄지만 정작 부가가치가 높은 프리폼과 프리미엄 광섬유에서는 해외 의존도가 높아 ‘광망 강국’의 위상이 소재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AI 애플리케이션용 케이블 수요는 2024년 전년 대비 137% 증가한 데 이어 2025년에도 77% 늘었다. 향후 2029년까지 연평균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전 세계 광섬유 수요에서 데이터센터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4년 5% 미만에서 2027년 약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광섬유 수요를 끌어올리는 중심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있다. 수만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하나의 거대한 연산 클러스터처럼 연결해야 하는 AI 데이터센터에서는 기존 클라우드보다 훨씬 많은 광섬유가 필요하다. GPU 기반 AI 연산 노드에 필요한 광섬유는 기존 클라우드의 약 16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투자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아마존, 메타 등 4대 빅테크의 올해 설비투자는 약 7250억달러, 한화 약 990조원으로 지난해 4100억달러보다 77%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약 75%가 데이터센터와 전력 설비에 투입될 전망이다.

해저케이블도 또 다른 수요처로 부상했다. 전 세계 국제 데이터 트래픽의 95% 이상이 해저 광케이블을 거치는 가운데 2025~2027년 신규 해저케이블 투자는 약 130억달러로 직전 3년의 두 배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통신사뿐 아니라 구글과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가 직접 해저망 구축에 뛰어들면서 수요 기반이 넓어지고 있다.

수요가 쌓이자 가격도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광섬유 가격지수는 2024년 3월 78.6으로 바닥을 찍은 뒤 지난해 11월 88.7, 올해 1월 107.9로 상승했고 3월에는 263.0까지 치솟았다. 중국산 범용 광섬유 G.652.D 현물가격도 올해 3월 기준 1월보다 165%, 전년보다 418% 급등했다.

중국 업체들이 데이터센터와 드론 등에 사용되는 고부가 제품 생산을 늘리면서 범용 제품 공급이 줄어든 것도 가격 상승을 자극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프리미엄 제품뿐 아니라 기존 범용 광섬유 시장의 수급까지 흔들기 시작한 셈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 같은 ‘AI 광섬유 특수’를 고부가가치로 연결할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광섬유 산업은 고순도 원료에서 프리폼 제조, 광섬유 인선, 광케이블 제조로 이어지는데 가장 높은 부가가치는 상류 단계인 프리폼에 집중된다.

프리폼은 광섬유 제조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 나노미터 수준의 굴절률 조절과 극도의 불순물 제거 기술이 필요해 전 세계적으로 생산 가능한 기업도 약 20곳에 불과하다. 결국 어떤 프리폼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광섬유의 성능과 기업의 수익성을 좌우한다.

글로벌 강자들은 이미 이 구조를 확보했다. 미국 코닝과 일본 스미토모·후루카와, 중국 YOFC 등은 프리폼에서 광섬유와 케이블까지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갖췄다. 범용 G.652.D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간 연결에 쓰이는 G.654.E, 해저망용 G.654.D와 다심 광섬유(MCF) 등 고부가 제품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규모에서 압도적이다. 중국의 광섬유 생산능력은 2019년 5억1300만F-km에서 2024년 7억5500만F-km로 늘어 세계 생산능력의 약 67%를 차지했다. 과거 저가 범용 제품에 집중했던 중국 업체들도 최근 초저손실 광섬유와 MCF·할로코어 광섬유(HCF) 등 프리미엄 시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LS전선과 대한광통신이 주요 광섬유 생산업체다. 이 가운데 프리폼부터 광섬유와 광케이블까지 일관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대한광통신 한 곳이다. LS전선은 프리폼을 일본에서 조달해 국내에서 광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대한광통신도 범용 G.652.D와 내굴곡성 제품 G.657.A1·A2는 자체 생산하지만 데이터센터 간 연결용 G.654.E와 해저용 G.654.D 등 최상위 프리미엄 제품을 양산하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와 해저망의 핵심 소재로 거론되는 MCF와 HCF 역시 국내에서는 양산 기반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다.

국내 업체 실적에는 최근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LS전선의 올해 1분기 광섬유 생산은 전 분기보다 13.6% 증가했다. 국내 통신망 유지보수와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대한광통신도 올해 1분기 생산 실적이 47.2% 증가했고 매출은 34.9% 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범용 광섬유 수출이 회복된 데다 북미 하이퍼스케일러에 864심 초고밀도 광케이블을 공급하면서 AI 인프라 공급망에 진입한 점이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조치도 국내 업체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지난해 9월부터 중국산 단일모드 광섬유에 43.35%의 반덤핑 관세를 잠정 부과했고, 올해 1월 최종 판정을 거쳐 같은 수준의 관세를 5년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내 통신업체의 국산 광섬유 조달이 늘면서 국내 수요 회복을 뒷받침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최근의 외형 성장이 곧바로 기술 경쟁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광통신이 공급하는 864심 초고밀도 케이블 역시 여러 가닥의 단심 광섬유를 고밀도로 집적하는 케이블 기술의 고도화에 가깝다. 광섬유 자체의 부가가치를 좌우하는 프리미엄 프리폼과는 다른 영역이다.

이 같은 차이는 수출 성적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5년 세계 광섬유 수출에서 중국은 10억6000만달러로 31.1%를 차지했고 인도 4억4000만달러, 미국 4억3000만달러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2700만달러로 세계 15위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의 광섬유 수출액은 2022년 5800만달러에서 2025년까지 연평균 22.3% 감소했다. 평균 수출단가 역시 kg당 81달러에서 63달러로 내려갔다. 같은 기간 고부가 제품 비중이 높은 일본은 kg당 111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범용 제품 중심의 한국이 중국과 인도의 저가 공세에 노출돼 있는 반면 일본은 프리미엄 시장에서 높은 단가를 유지하는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주요국이 광섬유 산업을 키운 방식도 한국과 대비된다. 중국은 국가 차원의 5G·FTTH 투자와 국영 통신사의 대규모 조달, 설비투자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결합했다. 올해부터는 정부조달에서 중국산 제품에 20%의 평가가격 우대까지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424억5000만달러 규모의 광대역 보급사업에 ‘미국산 우선 구매’ 원칙을 적용해 연방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미국산 광섬유 사용을 의무화했다. 일본은 NTT와 기업들이 공동으로 프리폼 대량생산 기술인 VAD를 개발한 뒤 자국 간선망에 대규모 적용해 기술 개발과 초기 수요를 연결했다. 인도 역시 광섬유케이블 생산 증가분에 4~6%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며 제조 역량을 키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적인 광섬유 수요 기반을 갖추고도 이를 소재 산업 육성으로 충분히 연결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유선 인터넷 회선 가운데 광섬유 기반 비중은 90.5%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2위지만, 광섬유와 광통신 소재는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핵심전략기술에서 독립 분야로 지정되지 않았다.

산업연구원은 우선 고부가 프리폼 제조 기술을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에 포함해 연구개발과 세제, 정책금융 지원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동시에 프리폼 원료인 고순도 사염화규소와 도핑용 게르마늄 등 상류 소재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고 봤다.

MCF와 HCF 등 차세대 광섬유도 선점 대상으로 꼽았다.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도 양산 초기 또는 상용화 준비 단계인 만큼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과 접속 부품, 광모듈 등 관련 생태계를 함께 키우면 후발주자인 한국도 기술 격차를 좁힐 기회가 있다는 판단이다.

마지막 퍼즐은 수요다. 국내 기술을 개발해도 안정적인 초기 수요가 없으면 생산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전력망과 통신망 등 국가 기간사업에서 국산 광섬유 소재 활용을 확대해 기술 개발과 실제 구매를 연결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결국 AI 시대 광섬유 경쟁은 케이블을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광섬유를 넣느냐의 싸움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2위 수준의 광망과 데이터센터·해저케이블 수요를 갖고 있지만, 고부가 프리폼과 차세대 광섬유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AI 인프라 투자가 늘어날수록 핵심 소재의 해외 의존도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광망 강국’에서 ‘광섬유 소재 강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범용제품 중심 반등을 프리미엄 프리폼과 MCF·HCF 같은 차세대 기술로 연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AI가 새로 열고 있는 광섬유 시장에서 한국이 단순 수요국에 머물지, 고부가 공급망의 한 축으로 올라설지를 가를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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