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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책도 구조조정 필요…핵심산업에 집중하고 평가도 바꿔야

이경호 기자

기사입력 : 2026-07-03 09:05

산업연구원 “핵심 분야 중심 지원체계 전환 필요”…비제조업·신산업까지 정책 범위 확대 주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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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파워 이경호 기자] 한국 산업정책의 가장 큰 과제는 단순히 돈을 더 쓰는 데 있지 않다.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집중해 지원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산업연구원은 한국 산업정책이 OECD 평균보다 작은 규모에 머물고, 정책 사업은 다수로 흩어져 있어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첫 번째 과제는 산업정책의 양적 강화다. OECD 국가들은 산업정책 지출을 늘리고 있다. 특히 재정지원은 2019년 GDP 대비 1.34%에서 2023년 1.55%로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 2021년 이후 줄어 2023년 GDP 대비 1.06%에 머물렀다.

이는 한국 산업정책이 직접 재원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이다. 주요국이 전략산업 육성과 공급망 안정, 기술안보 확보를 위해 재정 기반을 키우는 상황에서 한국도 산업정책 규모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보고서는 무조건적인 재정 확대만을 답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핵심은 산업정책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고, 지원을 집중할 분야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처럼 작은 사업이 많이 흩어져 있는 구조에서는 산업정책의 목표가 분명해지기 어렵고, 정책 효과도 분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개별 정책 사업 수가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 반면 개별 사업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이는 정책이 산발적으로 추진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글로벌 주요국이 전략 목표를 분명히 하고 과감하게 지원을 늘리는 흐름과 비교하면 비효율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정책 평가 프레임워크(순환구조)
산업정책 평가 프레임워크(순환구조)

따라서 산업정책의 첫 번째 구조조정은 유사·중복 사업의 통폐합이다. 사업 수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정책 목표에 맞춰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고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자원을 묶어야 한다는 의미다. 반도체, AI, 배터리, 미래차, 바이오, 핵심 소재 등 국가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에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더 선명한 정책 목표와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두 번째 과제는 수직적 산업정책의 보완이다. 한국은 그동안 수평적 산업정책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둬왔다. 모든 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산업환경 개선, 기술혁신, 기업활동 지원 등이 중심이었다. 이는 글로벌화와 WTO 체제 아래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산업정책 경쟁은 성격이 달라졌다. 주요국은 첨단전략산업을 직접 지정하고, 보조금과 세제지원, 금융지원, 인력양성, 인프라 구축을 결합해 집중 지원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과 기술패권 경쟁이 겹치면서 특정 산업을 겨냥한 수직적 산업정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 역시 제조업 중심의 전략산업 지원은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보고서는 장기간 제조업에 집중된 정책 지출 관성을 완화하고, 비제조업과 신산업까지 지원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제조업 경쟁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AI 서비스, 디지털 플랫폼, 데이터 산업, 기후테크, 콘텐츠·서비스 융합 산업처럼 새 성장축이 되는 영역까지 정책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조업을 줄이라는 뜻이 아니다. 제조업 중심 지원을 유지하되, 산업 지형 변화에 맞춰 비제조업과 신산업을 산업정책의 본격 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다. 글로벌 경쟁은 더 이상 공장과 설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데이터,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 에너지 전환 기술이 제조업 경쟁력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과제는 평가 체계의 전환이다. 산업정책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성과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수혜 기업의 매출이나 고용 증가만을 보는 방식으로는 산업정책의 실제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산업연구원은 수혜 기업의 개별 성과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산업정책 고유 목적의 달성 여부를 따지는 종합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산업경쟁력 강화, 공급망 안정, 기술 주도권 확보, 산업 생태계 고도화 같은 전략 목표를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평가 프레임워크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 해당 정책이 기업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본다. 매출 증가, 수익성 개선, 생산성 향상, 혁신 성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 기업 성과를 넘어 본질적인 정책 목적을 달성했는지 평가한다. 산업경쟁력 강화, 공급망 안정, 고용 창출, 기술·산업구조 고도화 등이 핵심이다. 셋째,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입된 비용 대비 가장 효율적인 정책 수단이 무엇이었는지를 따진다.

이 단계까지 가야 보조금, 세제 혜택, 대출·보증, 벤처캐피털 등 다양한 정책 수단 가운데 어떤 조합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산업 특성에 맞는 최적의 지원 믹스를 찾아야 정책 효과도 높아진다.

평가 결과를 정책 조정으로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과가 미흡하면 사업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중단하거나 개선해야 하고, 부분 성과에 그친 정책은 보완해야 한다. 효과가 확인된 정책은 더 과감하게 확대할 수 있다. 산업정책이 반복적으로 개선되는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산업연구원의 분석은 한국 산업정책에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한국은 주요국만큼 산업정책에 충분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가. 둘째, 그 자원은 국가 전략 목표에 맞게 집중되고 있는가. 셋째, 정책 효과를 제대로 측정하고 다시 자원 배분에 반영하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답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한국은 수출금융과 R&D, 중소기업 지원에서 일정한 강점을 보였지만, 전체 산업정책의 규모는 OECD 평균보다 작았다. 정책 사업은 많았지만 집중도는 낮았다. 수평적 정책 중심 구조는 산업환경 개선에는 유리했지만, 첨단전략산업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은 보완이 필요해졌다.

산업정책의 시대가 돌아왔다면, 한국도 과거의 정책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분야에 조금씩 나눠주는 방식만으로는 AI와 반도체, 배터리, 미래차, 기후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제 산업정책은 ‘얼마나 많은 사업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목표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 산업정책의 다음 과제는 명확하다. 재정 기반을 키우되,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지원을 묶고, 제조업을 넘어 신산업까지 정책 대상을 넓혀야 한다. 동시에 투입 대비 성과를 냉정하게 따지는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정책도 이제 성과와 효율을 따지는 정밀한 전략산업 운영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이경호 더파워 기자 lkh@th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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